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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나는 주머니 Oct 31. 2023

출근길 아무 말 대잔치 13.

그친 줄 알았는데 다시 내리는 비와 화창한 날씨에 예상 못한 비 중에 어떤 것이 더 당황스러울까. 나는 전자이다. 갑자기 내리는 비는 예상할 수 없었다는 합리화로 위안이 된다. 하지만, 다시 내리는 비는 우산을 준비할 수 있었다는 어쩔 수 없는 후회가 끈적이기 때문이다.

가끔 무언가를 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 때가 있는데, 오늘은 바로 고오급 우산이다. 우산은 집에도 회사에도 수십 개가 있지만 그 우산의 대부분은 편의점에서 구입한 오천 원 안팎의 우산이다. 그렇다. 그 말인즉슨 준비성이 없어서 갑자기 길거리에서 사들인 우산이 많다는 뜻이고, 또 한편으로는 한 개에 오천 원 이상의 돈을 지불할 수 없을 정도로 우산을 잘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우산을 공공재처럼 사용하고 있는 나에게 고급 우산이란 엄청난 사치품이다. 고오오오급 우산이란 엄청난 사치품을 집에 세 개쯤 두고 장마를 맞이하는 상상을 한다. 어마어마한 환희의 순간이다.

아, 예전에 채용파트에 있을 때 수행기사를 뽑는데 ’거꾸로 우산 발명가‘가 지원하셨었다. 거꾸로 우산은 우산을 접을 때 비에 젖지 않은 면 방향으로 거꾸로 접는 우산이다. 실로 굉장한 발명품이었다. 하지만 신은, 거꾸로 우산 발명가에게 길을 찾는 능력은 주지 않았다. 몹시 안타까웠다. 거꾸로 우산 발명가가 발명을 계속하지 않고 수행기사를 지원한 이유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거꾸로 우산 발명가가 발명만 해도 삶이 이어지는 상상말이다. 글쓰기 좋아하는 박쿠쿠가 글만 써도 삶이 이어지는 그런 상상말이다. 참으로 나약하기 짝이 없는 상상이다.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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