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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곰 Apr 16. 2020

4월 16일, 성수대교

지나간 것, 살아있는 것을 생각하며

평소 출퇴근에는 한남대교를 건넌다. 오늘은 청량리에 들릴 일이 있어 네비를 찍다가 성수대교를 건너게 되었다. 한남대교는 신사역 구간에서 진입이 어려워 그렇지 일단 다리에 올라서면 퇴근시간에도 수월하게 건너는 편인데 오늘의 성수대교는 꽉 막혀서 걸어가는 것만도 못했다.


꽉 막힌 성수대교에 갇혀서 오늘이 4월 16일이라는 점을 떠올리니 공교로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성수대교를 건널 때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떠올린다. 열번을 건너면 아홉번은 떠올리는 것 같다. '만약 지금 이 다리가 무너진다면 나는 살 수 있을까?'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나는 국민학생이었다. 나는 서울에 살지도 않았고 서울에 그런 다리가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지인이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었고 그때는 다리가 무너진 그 광경이 놀라웠을 뿐 충격을 받거나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왜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성수대교에만 올라서면 다리가 무너지는 상상을 하는 걸까.


사회적 참사란 이런게 아닐까? 집단의 기억에 거대한 시절의 트라우마를 남기는 것. 우리는 다리를 건너거나 여객선을 볼 때마다, 4월이 될 때마다, 기억을 소환할 것이다.


나는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건 문자 그대로 귀곡성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살아있는 사람이 내는 소리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은 절규하며 비명 지른다. 그 배가 침몰하는 걸 전국민이 무력하게 생방송으로 지켜봤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그게 벌써 6년 전의 일이라니. 자식 잃은 부모들을 광화문 앞에 고립시키던 경찰들과 입에 담을수 조차 없는 말을 지껄였던 놈들을 떠올리면 103석도 어찌 과분하다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성수대교를 건너려니 저 멀리 학교 도서관도 보이고, 오래 전 여자친구를 버스 태워 보내던 그 거리도 지나게 된다. 어딘가에 살아있지만 더 볼 수 없는 인연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다시 볼 수 없어도, 살아있는 동안 잘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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