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곰 Dec 15. 2020

청소년에게 인권 강연이 '더' 필요한 이유

2020년, 인권 강연을 다니며 느낀 점

고등학교 2학년때쯤으로 기억한다. 뉴스에서 경찰이 노조원을 폭력 진압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범죄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야말로 경찰의 본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수의 경찰이 저항할 능력을 잃고 쓰러져 있는 사람을 진압봉으로 두들겨 패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설명해주지 않았다. 내가 따르던 선생님에게 질문했지만 탐탁지 않은 대답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일은 계속되었다. 5.18 광주학살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역시 경악했지만 그것은 인터넷에만 있고 교과서에는 없었다. 체육시간에 '선착순' 같은 얼차려를 주는 교사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느꼈을 때도, 내가 잠깐 졸았다는 이유로 앞으로 불러내어 세차게 뺨을 후려쳤던 교사(그 교사의 이름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에게 억울함을 느꼈을 때도 그것을 설명할 언어와 논리를 알지 못했다. 그러고보면 그때는 '인권'이라는 말을 아예 알지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사실상 없었던 단어나 마찬가지였던 때였다. 그때 인권에 대해서 알았더라면, 적어도 내가 느낀 부당함과 의문들에 대해 최소한의 실마리를 찾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혐오와 인권>을 쓴 이후로, 2020년 한 해 동안 전국의 중고등학교에서 인권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가장 멀리 전남 화순고부터, 서울 영동중, 청주 금천고, 안성여고, 서울 내곡중, 하남 풍산고까지 대면 강연으로, 줌으로, 유튜브 라이브로 학생들을 만났다.


인권에 대해 전혀 접할 기회조차 없었던 나의 청소년기에 비한다면 이런 프로그램이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내가 느꼈던 막막함이나 불편함들을, 강연을 듣게 되는 아이들은 겪지 않도록 알게 해주고 싶다는 것이 내가 강연을 하면서 가진 목표였다. 인권을 안다는 것은, 어둠 속의 횃불 하나를 쥐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유하고 싶다. 어둠을 몰아내지는 못하더라도, 어둠을 버티고 최소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해주는 힘이 된다. 나에게 권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UN이라는 국제기구·국제사회에 의해 명문화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인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함께 연대하고 옹호하는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굉장히 크다. 그것이 당장 학교 폭력이나 여러 형태의 차별을 겪고 있거나, 불우한 가정에서 힘겹게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당장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이상적이고 공허한 탁상공론처럼 들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나, 분명 자신의 감정과 생각·신념을 인권이라는 언어를 알게 됨으로써 힘을 얻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금천고의 다양한 인권 프로그램. 이런 활동을 기획하고 실현하는 데에는 엄청난 고민과 노력이 필요했을텐데, 이런 선생님을 만난게 엄청난 행운이란걸 학생들이 알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 인권 교육이 필요한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나이 때문이다. 내가 앰네스티에서 인권에 관한 대중 인식 개선 캠페인을 해보면서 느낀 점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란 정말 어렵다'라는 것이다. 인권 문제들은 대부분 첨예하고, 논쟁적이며, 논란거리가 되는 이슈들이다. 난민, 사형폐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낙태, 성소수자 등 어느 것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러한 이슈들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답정너'나 다름없는 스탠스를 가지고 있다. 이미 자신의 신념과 가치체계에 따라 그것이 '잘못 되었다'라는 답을 내려놓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감정적으로 호소(인권침해 피해자들의 사례로)해도, 국제인권기준과 사례를 제시해도 소용없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반인권적이라는 사실을, 혐오주의자, 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난민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요구하는 것이며, 여성혐오를 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스트에 의해 남자가 역차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이미 가치 편향된 신념과 사고를 가진 성인과 달리 청소년들은 고정관념과 편견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다른 세계'를 알고 이해할 '여지(room)'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인권의 언어를 접한 세대가 기성 세대보다 인권적으로 성숙한 시민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월등히 높을 것이란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전남 화순고에서의 강연. 학생들이 가장 높은 집중도와 흥미를 가지고 참여해주었다.


화순고 학생들의 소감문. 강연을 듣고 좋은 영향을 받았다는 소감을 접하면, 좀 더 제대로 준비해야겠다는 책임감과 보람이 함께 든다.
소감문을 인용하도록 허락해준 화순고 학생들에게 홍성수 교수님의 책을 선물했다. 홍성수 교수님은 혐오표현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연구하는 법학자이다.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진행했던 안성여고 강연. '여고는 뭘 해도 반응이 최고'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호응을 너무 잘해줘서 기쁘고 재밌었던 강연이었다.
풍산고에서 마련해준 현수막. 단 1회 강연인데 이런걸 다 마련해주셔서 황송하지만 기분 좋았다. 지인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효과가.. �

강연을 거듭할수록 나도 더 좋은 자료를 보강하고, 때로는 졸거나 지루해하는 학생들을 보면 좀 더 재밌고 쉽게 전달할 방법 또한 고민하면서 강연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다.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한, 내게 주어진 그 1-2시간을 이용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흥미가 되는 인권 이야기들을 전하고 싶다. 그로 인해 몇 명이라도 인권옹호자가 더 생겨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는 일들이 되겠지만, 누군가의 생각이나 가치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것은 오만한 일이다. 다만 나는 그저 '인권'이라는 단어를 딱딱하고, 어렵고, 불편하고, 부정적인 언어가 아닌 '나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언어로 느낄 수 있는 작은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다.



삶을 바꾸는 상상력, 인권 감수성이라는 제목으로 인권 강연을 진행합니다. 인권의 개념에 대해 먼저 이해하고 난 뒤 인종차별, 성차별, 성소수자 혐오, 난민 혐오, 장애인 차별 등의 인권침해 사례를 소개하면서 여태껏 가졌던 여러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해 인식의 전환을 같이 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강연 문의가 있는 분은 lifeinaurora@gmail.com 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