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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곰 Jul 28. 2017

2017년 여름, 부산행.

이번이 네번째 부산 방문이다. 2002년에 주호가 부산에 살고 있을때 인협이와 처음 왔었다. 그때는 어떤 공원과 달맞이고개, 그리고 해운대인지 광안리인지 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바닷가에 가서 물놀이를 했는데 벌써 이게 15년 전의 일이 되었다. 정말 딱 그 정도 외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며칠 묵었는지, 뭘 먹었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내가 겪은 일인데도 지금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몇 장 남아버린 사진뿐이다. 18세의 나와 33세의 나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존재하는지 새삼 느낀다.


두번째는 제대했던 여름, 2006년이었다. 니엘이가 당시 만나고 있던 여자친구가 부산에 살고 있어서 그 친구들끼리 같이 놀자고 해서 네다섯명 정도가 부푼 꿈을 안고 놀러왔던거 같다. 그러나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도 컸고 숙소에서 어색하고 재미없게 술이나 마셨던 기억뿐이다. 다같이 술 마시고 있는데 김니엘이 혼자 리버풀 경기를 틀어서 본다든지, 내가 화장실이 급했는데 이준섭이 도무지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이준섭이 있는 가운데 내가 볼일을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다든지 하는 쓸데없는 기억 밖에는 남은게 없다. 결국 그 부산행은 김니엘과 그 여자친구의 시간이었고 우리는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 너무 재미도 없고 김니엘은 멋대로 굴고 딱히 거기 있고 싶은 마음이 도무지 들지 않아서 모두 자고 있는 가운데 아침 일찍 혼자 나와서 서울로 와버렸던 기억이 있다. 부산에 도착한지 만 하루도 안 되어서 돌아와버린 것이다. 떠날 때는 여름 바닷가에서 이쁜 여자아이와 달달한 로맨스 혹은 짜릿한 원나잇을 바랐으나 그런건 도무지 나와 인연이 없다는걸 그때 재확인했다.


세번째는 2011년 8월이었다. 당시 한 달 정도의 해외여행을 하고 귀국 직전에 홍콩에서 스탑오버하며 나와 통화 중 크게 싸우고 나에게 헤어지자고 했던 E를 설득하기 위해 김해공항으로 갔다. 귀국날짜만 알고 정확한 편명이나 시간을 알 수가 없어서 귀국장에서 그녀를 만나려면 홍콩에서 들어오는 모든 해당 항공사의 승객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 밤 기차를 타고 부산에 새벽 4시 정도쯤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바로 김해공항으로 갔는데 공항이 전부 문을 닫고 열지 않아 아무 벤치에나 누워서 30분 정도 기다렸던거 같다. 한 2-3시간쯤 기다렸을까. 귀국장으로 들어오는 그녀를 찾을 수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놀라움보다는 당혹감이 더 컸었다. 그녀는 나를 매몰차게 대했고, 한달동안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애인이었지만 어떠한 재회의 언질도 받지 못한채 나는 세상에서 제일 슬픈 남자가 되어서 그곳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때의 부산행은 정말 부산역-김해공항-부산역으로 끝나버렸다. 그래도 그 일이 있고 나서, 멀리서 온 나를 그렇게 돌려보낼 수 밖에 없어서 마음에 걸렸다고 나중에 말해주었기에 당시에 그렇게까지 찾아간 의미는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렇게 먼 거리를 달려와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하릴없이 돌아가야했던 그 때의 그 감정만은 내내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런 이유들로 나의 부산에 대한 기억은 정말 바다 위의 파편뿐이다. 재밌고 좋았던 기억보다는 당황스럽거나 어이없거나 마음 아픈 기억만 남겼고, 그 장소들은 어디인지도 불분명하게 기억을 떠다닌다.


이번의 부산행은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트위터에서 알고 지낸 H님과 오래 전 하이버리때부터 10년 넘게 랜선으로만 알고 지낸 E님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다른 이들에게는 '맨날 집에 혼자만 있으니까 그냥 콧바람이나 쐬려고'라고 이유를 댔지만 정작 여행이나 관광 목적으로 혼자 다니는걸 참 못하는 나라는걸 잘 알기에 다른 기대가 특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H님은 좋은 분이었고 맛있는 밀면집에 데려가 주었으며, 커피를 마시며 한참을 영화 얘기를 하다가 <덩케르크>를 보고 헤어졌다. E님은 야근과 창원 출장으로 인해 만나볼 수 없었다. E님은 2006년 코엑스에 티에리 앙리가 왔을때 멀리서 클리시 레플리카를 입고 있어서 E님인줄 모르고 봤던 것 이후로 내내 만나지 못하고 있다.

정작 혼자가 되니까 먹는 것 외에는 달리 딱히 할 게 없었다. 게다가 밀면을 제외한다면 내가 먹은 것들은 서울에서 더 맛있게 파는 가게들이 있다. 그럼 부산에 온 김에 바닷가에 가서 헌팅을 할 것인가, 나이트클럽을 갈 것인가, 혼자 포장마차 같은데서 술이라도 마실 것인가. 나는 너무나 명백히도 어느 쪽에도 능숙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인간이다. 이럴거라면 굳이 뭐하러 왕복 10만원 정도나 드는 교통비와 숙박비까지 들여서 왔을까도 싶은데, 정확히 어떤 마음인지는 나도 나를 모르겠다.


다만 헤어진 E가 많이 생각난다. 부산은 그녀의 도시니까. 아마도 내게는 내내 부산이 그러할 것이다.


그녀는 지금도 베를린에 있을까. 지금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후회 같은건 전혀 하지도 않겠지. 그렇게나 많이 좋아했는데 이제는 영영 만날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은, 생각해보면 얼마나 슬픈가. 연애나 섹스에 있어서 나는 전과 비교한다면 거의 다른 사람이라고 할만큼 달라지고 자유로워졌으나, 그 시절 그 뜨겁고 절절했던 마음을 떠올리면 가슴 깊숙한 곳이 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덩달아 헤어진 그녀들을 하나하나 헤아려본다. 이렇게도 별 볼일 없는 나를 좋아해줬던 사람. 지금 다시 당신을 만난다면 그때의 그 실수와 아쉬움을 절대 반복하지는 않을텐데.


되돌리기에 나는 이제 너무 뚱뚱하고, 나이만 먹은 채로 부산에 홀로 남았다. 누군가를 그때처럼 또 열렬히 애정할 수 있을까. 부산에 내가 또 올 일이 있을까. 이런저런 상념뿐인 상념만 남기며, 부질 없고도 덧없는 2017년 7월, 부산에서의 잡상 그리고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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