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했던 2024년 8월
2024년 9월의 첫 번째 월요일, 어제까지도 30도를 웃도는 더위를 견뎌낸 것이 맞나 싶을 만큼 갑자기 가을이 찾아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산에 가셔서 밤송이를 주어 오셨고, 이른 추석으로 벌써부터 추석 선물이 오가며, 살짝 흩뿌린 가을비로 선선해진, 조금은 낯선 9월의 시작입니다.
2024년 8월은 역대 최대로 더웠답니다.
뜨거운 날씨만큼이나 익숙지 않았던 것은 기습적으로 내리는 국지성 호우였지요. 비 예보가 없는데도 쏟아지는 폭우는 우산 없이 나간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었고, 폭우 뒤에 나타나는 한없이 맑은 하늘은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변덕스러운 날씨는 4월의 특권이라 생각했는데, 지난여름은 변덕을 지나 변화무쌍했습니다. 2024년 여름, 저의 삶도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일들로 채워졌더군요.
지난여름, 저는 저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사별 이후, 저 자신을 미워하고 망가져 가며 떠난 사람에 대한 미안함을 덜어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살아있는 사람들, 나를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더군요. 떠난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저에게는 남아있는 사람들도 소중했습니다. 더 이상 저를 벌주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저를 사랑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저를 용서해 주고 사랑해 주기 시작하니, 주변이 보이더라고요. 나를 기다리던, 딸, 부모님, 심지어 우리 집 강아지까지 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여름의 초입부터, 나는 다시 나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잡고 제가 만들어 놓은 높은 벽들을 거둬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기다려주던, 가족들 친구들은 저를 반갑게 맞아줬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이리도 즐거운 일인지, 사람들과 늘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던 제가 이제 다시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얼마나 미련하게 제 자신을 옭아 매고 숨통을 틀어막고 있었는지, 이제야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난여름, 저의 삶은 날씨처럼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맑은 하루인 것 같아도 비가 내렸고, 그칠 것 같지 않던 폭우도 금세 개고야 마는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여름의 시작부터 8월의 마지막 날까지, 태풍이 몰려왔다, 유성우가 떨어지는 밤하늘이 펼쳐졌다, 요동을 치는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변화무쌍한 날씨만큼이나 감정적으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나날들이었지만, 그래도 그 마지막은 한없이 달콤했습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지난여름의 추억들은 앞으로 저를 더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비 따위, 내리라 하지요. 태양 따위, 이글거리라 하지요. 어차피 가을은 찾아오니까요. 내가 애태우고 아파한다 한들, 변하는 건 없으니까요.
한여름밤의 꿈
셰익스피어의 희곡이자 멘델스존의 극음악의 제목입니다. 제목 만으로는 꿈처럼 지나가는 여름의 추억일 것 같지만, 실제 줄거리는 극속의 사랑하던 주인공들이 모두 결혼을 하는 해피엔딩입니다.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에서 나오는 웨딩 마치는 결혼식 끝에 신랑신부의 행진에 전통적으로 쓰이곤 합니다. 갓 결혼한 부부의 앞날을 축하해 주는 행진곡이지요. 저에게도 지난여름의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한 일련의 일들이 꿈을 꾼 것처럼 믿기지 않고 허무했던 여름이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꿈같은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라 생각이 되네요.
2024년 여름, 꿈같던 8월의 그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저에게는 달콤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이제 다가올 가을은 조금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맞이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