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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별 Feb 27. 2024

은행원 생존일지 1.

친구도 없는데 지인 영업을 하라니


정보성 글을 쓰겠다는 다짐 이후

각을 잡지 않으면 글이 나오지 않았다.


호기롭게 선언했으나

수준 이상의 일이었나 보다.


더 자주 글을 쓰며

마음 편히 내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어

에세이를 다시 쓰기로 했다.



요즘 나는 예전과 좀 다른 일을 한다.


객장에 앉아 개인 고객들과 상담하는 대신

전화기 너머의 법인 고객들과 만나는데


당연히 업무의 성격이 너무 다르고

요구하는 지식에도 차이가 있으니


겉은 아무렇지 않은 척 씩씩해도

속은 문드러지는 중이다.


평범한 어른이라면 비슷할 것이다.


힘들어도 마땅히 얘기할 데가 없으니

힘듦을 이겨내는 그 날을 향해

당장 주어진 하루를 버티는 것이.



마음 터놓고 얘기할

친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영업 한다는 말을 하기도 쑥스럽게

나는 참 친구가 없는 편이다.


혼자가 편하고 다가가기 어려워 하는

내향적인 본성 탓도 있고


대소사를 잘 챙기지 못하는

무심한 성격 탓도 있고


그렇게까지 매력적이진 않은

프로필 탓도 있겠다.



기억 속에서도

친구가 없어서 외로웠다.


생일에 초대할 사람이 없어서

연휴에 연락할 사람이 없어서


기쁨과 슬픔을 진심으로 나눌

유일한 사람이 엄마 뿐이라서.


엄마가 점점 걱정을 하게 되자

슬픔은 나누는 것이 아니라


누르고 견디거나

스스로 해소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직장을 갖고 가정을 가지면

테두리에 갖힌 안정적인 관계가

외로움을 없애 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나는 예상치 못하게

영업 직무를 하게 되었고


새로운 프로모션이 시작되어

실적으로 줄을 세울 때 마다


연락할 곳 없는 카톡을 뒤적이며

왜 이렇게 친구가 없을까 속상해하며

딱히 잘못한 건 없는 인생을 돌아보아야 했다.


세월이 흘러 경력이 차고

고객들이 내 말에 귀기울이게 되고

그래서 지인 영업이 필요 없게 되었을 때


친구 없는 설움을 벗어난 것 같은 착각에

잠시나마 기쁘고 행복했다.



착각이었다.


내점고객이라곤 거의 없는

기업 전용 지점에 발령이 났고


때마침 머릿수를 채워야 하는

프로모션이 시작되었다.


누구도 혼을 내진 않지만

매일 집계하여 보고되는 실적 앞에


의기소침해하지 않을 수 있는 대인배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헐거운 관계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용기 내어 부탁하며 뿌린 링크에는

아무도 응하지 않았고


시누이, 시동생에게 말해줄 수 있는지

남편에게 두 차례 부탁한 결과는

그걸 꼭 해야 하냐는 핀잔이었다.



꼭 해줄 필요는 없지.


하지만

대출이나 세금 문제가 생기면

아무렇지도 않게 답을 요구하던 사람들이


반대로 내 부탁은 거절한다니.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코끝이 찡해지는 일이긴 하다.

(돈이 드는 부탁도 아니었다.)


주변에서 도움을 거절한다면

더는 기대로 인한 상처라도 받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잘 하는 고객의 마음을 사는 일.

그걸로 어떻게든 고객에게 영업을 하기로.


그리고 더는 

은행 밖에서

오지랖을 부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생각해보니 고객님들께

참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10년간 이 일을 하는 것이

고객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지인도 피하는 영업을

흔쾌히 당해주셨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고객 한 분 한 분께

최선을 다하려 했던 것 같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은행원이 될 수 있도록.



프로모션 하나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결국 결론은

친구가 없으면

지인영업을 하다 멘탈 나가기 딱 좋다는 것.


왠만한 관계엔

지인영업이 더 어렵다는 것.


고객이 있어

친구 없는 영업직도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


친구가 없어도 고객이 있어  

은행원으로 살아남았음에

새삼 감사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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