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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별 Mar 05. 2024

은행원 생존일지 2.

본능의 역행자로 선정되었다


승진자들을 위한 연수 자리.


틀릴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검사라며

그래서 아주 비싼 검사라며


마치 직장 내 MBTI같은

 검사의 결과지를 주었다.


특이사항이 있는 사람들은

실명이 거론되는 영광(?)도 함께.


150명 틈에 묻혀 있고 싶었건만

기어코 이름이 불리웠다.



OOO님!


현실에서는 빠르게 움직이는데

욕구를 보니 여유롭고 싶어 하시네요.


겉으론 빠릿빠릿 하지만

속으론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하시네요.


현실과 욕구의 갭이 가장 크신 분인데

어떠세요, 검사 결과가 맞나요?


음.

그런 것도 같은데요...

그래도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강점은 있다.


나의 강점은

빠른 일처리라고 생각했다.


고객의 문의, 상사의 요청

도처에 널린 금융정보에


빠르게 반응하는 것으로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신입직원 시절,

은행 용어를 도통 이해하지 못해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던 열등감과


영업하는 사람 치곤

부족한 인맥과 말주변 같은 것들을


상쇄해줄 자존감의 근거

필요했던 것 같다.



본능을 역행하는

빨리, 더 빨리.


숨보다 가쁜 일처리 중간 중간

한숨을 내쉬던 이유였다.


한숨을 한 차례 토해내고 나야

숨이 제대로 쉬어진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



역행하고 있는 상태를

원위치 시킬 생각은 없다.


빠른 것이 여전히

작은 업무 강점이길 바란다.


다만 검사 결과를 보고 난 뒤

숨통을 좀 틔워줘야겠다 싶어


종이로 된 책 한 권을 주문했다.


눈독들여 왔던

알랭 드 보통의 <불안>.


(맞다. 난 지금 불안하다.)



빨리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졸면서 쉬엄쉬엄 대충 해도

아무 눈치도 보이지 않는 일.


생산적이진 않지만

잉여롭지만도 않은 일.


내 소유의 책을

접어가며 읽는 것이


욕구와의 간극을

가장 가성비 있게 줄이는

방법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아이유님 짤


'빨리' 하는데 정신이 팔려

번아웃이 오기 전에


본능을 역행하고 있다는

성찰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어른이라서

해야 하긴 하지만


짧게 끝낼 수 있는 건 아니니


가끔은 방향을 거스르느라 힘들

마음도 좀 돌봐줘야겠다는

생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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