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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별 Aug 13. 2024

은행원 김지원

#2. 돈 값 못하는 인간


띵동 -

"1번 고객님!"


1번 고객은 막내의 몫이라던 연수원에서의 충고를 떠올리며 떨리는 첫 고객을 맞이한다.


"청약 가입하러 왔어요."


청 ... 청약? 아 그래, 주택청약. 집 분양에 필요한 그거. 예금 적금 가입하듯 하면 된다고 했는데,


화면에 뭐 이렇게 채워야 할 옵션들이 많은 건지 모르겠다. 희망 평형, 주민등록지 주소 ... 서류 검토까지 해야 하는 청년형 주택청약이 아닌게 그나마 다행이다.  


얼굴이 새빨개져 한 칸 한 칸을 겨우 채우고 있는 지원의 모습에 어리둥절하던 고객은 이내 지원의 창구 옆에 붙어 있는 '신입직원' 팻말을 발견하곤 옅은 한숨을 내쉰다. 일찍 끝내긴 글렀다는 체념이랄까,


덜덜 떨리는 멘탈을 부여 잡고 겨우 만든 통장을 고객님께 건네고 나니, 다음 고객을 호출하기가 겁이 난다.


하지만 내점 고객이 많은 지점 객장은 이미 만석 상태. 지원의 자리가 빈 것을 본 사람들이 모두 지원의 손가락만 바라보는 느낌이다.


띵동-

"5번... 고객님..."




"기업뱅킹 등록해주세요."


기업뱅킹? 관련된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찌어찌 등록 방법을 찾긴 했는데, 건건이 생소한 항목들이 가득하다.


지원은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하필 신입직원을 동료로 받아 더 바빠 보이는 선배들의 모습에 단념하고 만다.


이 때 염치 불구하고 물어보았어야 했는데.


모든 업무를 가까스로 마치고 한 숨 돌리려던 오후, 민원 글이 올라왔다.


<무능력한 직원 교육 제대로 해 주세요>

오늘 기업뱅킹 업무 등록을 하기 위해 XX 지점을 찾았습니다.

직원이 딱 봐도 서툴러 보이더니 결국 제가 필요한 업무처리를 누락했고, 불편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정도면 월급 받을 자격도 없는 것 같은데 그 돈 받으며 창구엔 왜 앉아있나요?




적나라한 민원에 참았던 눈물이 고였다.


복수전공한다며 대학을 5년이나 다니고, 나머지 공부까지 한 신입직원 연수를 2주나 거쳤으면서 아직도 미숙하기만 한 스스로가 싫었고, 무능하고 자격이 없다는 표현이 마음을 후볐다.  


휴지로 몰래 눈물을 찍어내고 있던 지원을 부지점장님께서 조용히 부르셨다.


"김주임~ 그럴 수도 있지, 너무 속상해 하지 마. 이 정도는 누구나 겪어. 암튼 우린 고객님께 죄송하다고 사과 드리고 민원 취하도 부탁드려야 하는데, 전화는 내가 할테니 고객님 다시 오시면 제대로 업무 처리 해드려."


화가 난 고객과 다시 만나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은행 창구의 일은 결국 결자해지였다.


아랫잎술을 뭉개지도록 깨물며, 간신히 눈물을 참고 민원 고객의 업무를 하고 나니 퇴근 시간. 이렇게 허둥지둥 보낸 하루는 난생 처음이다.


 떠밀려 1번으로 퇴근을 하며 지원은 동기 톡방에 하소연을 남긴다.


그러자 누군가가 대답한다. 자신은 거스름돈을 잘못 드려서 통장이 얼굴로 날아왔다고. 이에 질세라 고객이 입금하라며 10원짜리 동전을 던졌는데 자신이 마치 10원짜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는 동기도 있었다.


동기들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지원은 돈 값 못한다는 팩트 섞인 비난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언젠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상처로 남을 말이었다.


겨우 첫 날인데, 벌써 내일의 출근이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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