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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Aug 21. 2020

기안84 여성혐오, 나쁜 의도는 없었다


최근 웹툰 작가 기안 84의 여성혐오 표현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극 중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20대 여성 인턴 봉지은이 조개를 배에 올려 깨부수는 장면 때문이다. 이후 봉지은은 40대 노총각 팀장과 연애를 시작하며 ‘정규직’으로 입사하게 된다. 이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은 두 가지다. 장면이 묘사된 맥락을 표현의 자유 범주에서 용인해야 한다는 것과, 이는 분명한 여성 혐오적 표현이라는 것. 여성으로서 나의 판단은 확실하다. 해당 장면은 여성 혐오적 맥락을 담고 있다. 왜냐고? 여성인 내가 그 장면을 보고 불편했으니까. 예술적 가치? 내(여성)가 불편하다니까요?     


혐오와 차별은 주체의 의도와 무관한 개념이다. 흔히 ‘말실수’로 포장되기 쉽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정치인들의 꾸준한 실언이 그 예다. 함께 연탄 봉사에 나온 흑인에게 “네 얼굴이 연탄색이네”라고 했던 김무성 전 의원. 봉사 현장에서 흑인 참여자를 차별할 나쁜 의도가 있었을까? 수년 전 일이지만, 해당 기사를 잊을 수 없다. 기사 자료사진 속 흑인도 분명 웃음을 유지했고, 그들의 분위기는 꽤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무성은 한동안 해당 발언으로 인종차별을 했다며, 비판 받았다. 정치인들의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실언’은 넘쳐난다. 이는 상대적 강자에 위치할수록 약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쉽게 결여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본디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은 집단은 그렇지 못한 이들을 깎아내리는 것을 즐긴다.   


   

혐오 표현이 주체의 의도와 무관하다는 개념. 뒤집어 보면 우리는 모두 혐오 표현에 있어서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내포한다. 친구들끼리의 실없는 대화에서, 많은 이들이 욕설을 사용한다. 쉽게 내뱉는 욕조차, 의미를 해석했을 때 사회적 약자를 이용한 비속 표현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모두 혐오 표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렇듯, 누군가에게 강자일 수 있는 우리 모두는 우리가 모르는 새에 누군가를 쉽게 대상화하고, 구별 짓는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 혹자는 뭘 그렇게 불편하게 따지냐고 푸념할 수 있겠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내가 조금 더 조심스럽게 행동함으로써 타인의 존엄을 지킬 수 있다면, 인간 된 도리로서 그렇게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기안84 논란을 더 나은 전환점으로 만들기 위해서, 기안84 한 명에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숨쉬듯 허락됐던 약자에 대한 혐오 표현, 이에 어떤 방식으로든 가담했을지 모르는 나를 돌아보라.

     


혐오와 차별이 무분별한 일상을 살아내면서, 내 인권 감수성이 조금은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품종견, 소형견 선호 현상이 비정상적으로 강세한 반려문화에서, 여성으로 ‘토종견’을 반려하면서다. 후에 내 브런치에서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풀겠으나, 토종견 여성 보호자들이 산책 현장에서 겪는 언어폭력은 흔한 일상이다. 여성 보호자를 향한 욕설부터, 토종견 비하 발언까지. 이렇듯 상대적으로 더욱더 비주류에 놓이게 되면서, 차별과 혐오에 무던한 이들이 약자를 어떻게 갉아먹는지 뼈저리게 경험 중이다. 이는 나도 누군가에게 강자일 수 있으며, 생각 없이 내뱉은 내 말이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됐다. 경험만 한 가르침이 없겠으나, 혐오와 차별에 더 예민해지고 싶다면 조금 더 아래를 보면 된다. 생각보다, 우리 사회엔 내가 쉽게 상처 줄 수 있는 이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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