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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림 Mar 29. 2022

내가 대학시절 외국어에 목숨 건 이유

4개국어 도전기

대학교 2학년 말레이시아 교환학생에 다녀온 후 외국과 해외여행기와 관련된 대외활동 두어개에 지원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불합격. 당시 처음 도전한거라 낙방의 슬픔도 컸다. 지금 같았으면 적어도 다섯개에서 열 개 정도 쓰고 그래도 안되면 '누가 이기나 보자' 하는 마음에 지원하고 또 지원하겠지만 그때는 지원하면 당연히 붙을거라 생각했다.


SNS는 나의 얼굴이 노출되는게 싫었고, 당시 친한 친구들이 대부분 개인정보를 되게 중시하는 애들이라 SNS를 아예 하지 않는 애들이었어서 뭔가 나도 무의식적으로 SNS를 회피한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사서 읽을 때도 SNS에 부정적인 시선이 담긴 것들만 고집해서 읽었으니 말 할 것도 없지. 이런 내가 대외활동 지원서에 뭐라도 채우기 위해서는 자격증이 필요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 공자학원에서 배운 중국어로(매주 여행가느라 출석을 절반도 안했다) 시험이 한 달정도 밖에 안남은 HSK 4급을 신청했고, 남은 기간 열심히 공부해서 300점 만점에 약 260점정도 점수를 냈다. 


이 상태로 외국어에 쪼금 자신감이 생겨서 춘천국제마임축제 통역봉사 지원을 했고, 합격을 했다. 오전과 낮 시간에는 알바를 하고, 오후에는 유튜브로  중국어 회화공부와 HSK 5급을 공부하고 저녁에는 책을 읽으면서 이때 처음으로 자기계발다운 자기계발을 시작했다. 그리고 5,6급을 취득한 후 오랜 시간동안 갈망한 "공자장학생"에 합격하여 중국에 다녀왔다. 당시 너무 중국어에 몰두해서 가족이나 친구들이랑 전화할때도 무의식적으로 중국어가 튀어나오고, 기숙사에 정전됐을때도 "정전"이라는 한국어가 생각이 안나서 한국인들한테 중국어로 말을 했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중국에 다녀온 후 "중국어 잘하는 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기분이 좋았고 처음으로 내가 결정해서 내가 이뤄낸 결과이기에 뿌듯했다. 그래서 그 자신감으로 한어교 중국어 말하기대회에 나갔다. 나중에 알게된건데 한어교 말하기대회는 말하기와 공연(노래, 춤, 만담 등)이 거의 50:50반반 비율로 평가된다. 하지만 나는 말하기가 훨씬 큰 비중을 둘거라고 생각하여 말하기 준비는 90% 그리고 노래연습은 10%밖에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말하기 시험중 중간에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5초 이상을 가만히 있었던 분께서 나보다 높은 상을 받았다. 그 분은 말하기에서는 감점이 됐을지 몰라도 공연을 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 무용을 현대무용과 엮어서 추셨다. 나는 중국 가요를 마이크도 없이 집에서 불러서 녹음한게 끝이었으니 할 말은 없다. 여하튼 그래서 나는 아무리 HSK6급이 있고, 중국인도 중국인으로 생각했을 정도의 회화실력이긴 했어도 이런 대회에서 상위권을 못 할 정도니 나만의 무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때 마침 국제기구에 대한 관심도 생겨서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처음엔 독학으로 하려고 했으나 동사변화가 워낙 까다로워서 학교에서 학원비 지원을 받아 두 달동안 기본 문법을 일주일에 한 번씩 과외를 받았다. 그런데 문법만 거의 숙지하고나니 웬만한 단어들은 영어랑 비슷한게 많아서 공부하는게 재밌었고, 내가 이 언어를 유창하게 해야 나중에 국제무대에 섰을때 부끄럽지 않을거라 생각해서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9월에 DELF 시험을 신청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강제 취소되었고, 2021년 7월에 있었던 TCF 자격증 듣기 B1, 독해 B2를 취득할 수 있었다. 


이렇게 대학교 3학년을 마치니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라는 스펙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3학년 1년동안 다양한 대외활동을 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FEALAC"이라는 외교부 중남미협력국에서 진행하는 활동이었다. 여기에서 다양한 포럼을 취재하면서 스페인어가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리고 서어서문학과 스페인어학과 친구들이 많았기에 '나도 한 번 배워볼까?' 라는 생각이 든 것 같다. 대학교 4학년,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라임을 맞추듯 한 학년당 1개의 언어를 먹어버렸다고 할 수 있게 하나를 더 배우기로 결심했다. 말레이시아 교환학생 시절 배웠던 말레이어도 성적이 나쁘지 않아서 이걸 다시 배워야하나 생각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배우는 것의 맛과 재미를 알게된 내가 세계를 유랑할때 도움이 되면 좋은 언어를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학교에서 언어교환 파트너가 페르난다라는 멕시코에서 온 언니여서 나보고 스페인어로 말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프랑스어랑 비슷하니 금방 배울거라고 해서 스페인어를 21년 1월에 시작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페루 친구랑 만나서 놀기도 하고, 스페인 사람이랑 레뷰 협찬 받은걸로 밥도 먹고 하면서 라틴아메리카 문화에 빠져버렸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마침 코로나로 인해 수업도 비대면이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면 외국어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1학기때는 거의 스페인어에 올인하다싶이 했고, 2학기때는 회사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인턴을 하면서 출퇴근 전에 스페인어 공부를 해서 DELE B1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해서 나는 대학교 학부시절동안 4개의 언어를 배우고, 모두 b1이상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스페인어 결과 아직 안나온거 빼고는 모두 취득) 다른사람들은 이런 나를 대단하다고 평가하지만 위에서 적었던 것처럼 사실은 나에게 내세울만한 무언가가 없기때문에 내가 잘하는것을 특화시킨 결과라고 생각한다. 경제, 컴퓨터 등 자격증을 따고 공부하는 것보다 새로운 외국어 자격증 하나를 더 따는 것이 내가 더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까지가 제목에 쓴 것처럼 내가 대학시절 외국어에 목숨건 이유다. 사실 나는 하나의 외국어를 통역사님들만큼 잘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의 목표가 하나의 외국어를 현지인 이상으로 잘하는 것보다 다양한 외국어를 배워서 세계와 소통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에 개의치 않는다. 사실 어렸을때도 다양한 외국어를 배우고 싶었지만 엄마께서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시고,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게 어렵다는 것을 몸소 겪으셨기에 나한테는 "영어만 완벽하게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셨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는 영어 면접, 영어 토론등 영어를 요구하는 것이 많기에 교포만큼 능통한 것이 취업시장에서는 더 환호받을 것 같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다양한 외국어를 배우며 그 언어에 녹아있는 문화를 알 수 있었고, 넓은 마음과 시야를 갖게되었고, 세계를 가슴에 품을 수 있었기에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내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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