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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상 Aug 18. 2021

용기부족을 깡다구로 포장한 나

때로는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깡다구" 악착같이 버티는 오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


장점을 소개할 때, 나는 항상 '깡다구'를 자신감있게 외친다. 나를 강하게 만드는 고통을 즐긴다. 한계에 맞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 한계를 뛰어넘었을 때의 희열이 행복하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든 원동력이라는 말까지. 나는 남들이 때때로 '무식하다'고 말할 정도로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다. 사실 만사에 둔한 사람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다. 힘듬도, 고통도, 어려움도 남들보다는 덜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니까.


어쨌든 내가 이런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갖게 된 것에는 나름의 계기가 있다. 약 10년전, 중학교 때 이른바 '수포자'가 될뻔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수학은 내게 너무 어려운 과목이었다. 다른 과목의 몇 배를 공부했지만, 성적이 중위권에서 변화가 없었다. 분명 공부한 문제였는데, 시험때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노력했지만, 변화없는 성적은 늘 좌절감만 주곤했다. 수학은 나랑 맞지않는 과목이라는 생각밖에 들지않았다.


'이번에도 안되면 진짜 포기다' 포기가 턱끝까지 차올랐던 중3 2학기, 그렇게 나는 마지막으로 제대로 수학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본격적인 도전에 앞서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를 수없이 고민했다.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조금만 문제가 응용되어도 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공부하는데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걸까. 더이상 기존방식대로 노력하는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공부방법을 점검했고, 기존방식을 아예 버렸다.


문제집푸는 시간을 30%로 줄였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공식과 개념이해에 집중했다. 모든 공식을 스스로 증명하면서, 개념을 다각도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수학을 잘하는 친구들도 어려워하는 증명이 내게 쉬울 리가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오기로, 한번 끝을 보려고 했던 것 같다. 힘들었지만 노력했고, 그 노력의 결과는 성적으로 나타났다. 중학교 3년 내내 100등대였던 성적을 30등대로 끌어올린 것이다. 그때부터 수학에 재미를 붙여서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수학은 모의고사에서 1등급을 받는 자신있는 과목 중 하나가 되었다.


10년 전, 처음으로 나의 한계에 맞서 제대로 노력했고, 스스로 한계를 뛰어넘는 희열을 맛본 것이다. 한계를 스스로 극복해낸 뿌듯함덕분에, 수포자 될뻔했던 과거는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어떤 어려움에도 쉽게 포기하지않는 ‘끈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단순히 끈기를 넘어, 끝없이 스스로를 한계앞에 세우고 극복해내게 되었다. 소심한 내가 신입생멘토, 학생회 간부 등 리더를 스스로 자처해서 도전했다. (물론 내 성향과 능력상 구성원들에게 민폐를 주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과체중에 체력거지인 몸을 이끌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597km를 걸어서 완주해내기도 했다. 자신없던 영어로 모든 것이 진행되는 학교를 선택한 것도, 10년전 그때의 희열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늘 긍정적으로만 포장되는 끈기도 마찬가지다. 나는 '끈기'와 '깡다구'덕분에 한계에 끝없이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마음속에 ‘포기에 대한 두려움’을 가득 채웠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한번도 제대로 포기해본적이 없다. 포기가 두려워서 흔한 휴학조차 하지못했다. 그저 한국사회가 정해놓은 길만 따라 걸었다. 학창 시절, 어디에서도 부끄러움없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대학 중 하나에 진학했다. 어느정도 미래가 보장된 이른바 '전화기'에 속하는 전공을 선택했고, 적어도(아마??) 망할 걱정은 없는 규모의 회사를 다니고 있다. 나라고 항상 평탄하기만 했을까. 사실 나도 가끔은 멈춰서 쉬고 싶었다. 때로는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늘 겁쟁이에 불과했다. 항상 포기가 두렵고 무서워서, 그저 나를 채찍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항상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멋지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 가지고 있는 것들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만큼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존경스럽다. 포기에 대한 두려움으로만 가득한 나에게는 도저히 쉽지않은 일이다. 6월 중순, 나는 이제서야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지금도 그 고민은 유효하다. 어쩌면 이직도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처음부터 이곳을 떠나는 게 답인걸 알고 있었는데, 포기가 두려워 그 답을 애써 2년간 무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이제서야, 처음으로 그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 꼭 이직을 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직이 아니더라도, 나도 한번쯤은 걷던 길을 멈춘 채 쉬어가거나, 다른 길을 가보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학교도, 회사도, 인간관계도, 그 모든것도 버티는 게 답이 아닐때가 있다. 버틴다는 게 반드시 극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억지로 버티기보다는 포기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걸어온 길을 멈춰서서 주변을 둘러보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5년 넘게 달려온 내길도 이제 한번쯤은 멈출 때가 되지 않았을까.


더불어 이런 나의 용기가 우리사회에서 응원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사회는 유독 '포기'에 있어 각막하게 구는 경향이 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을 '패배자'로, 때로는 '배신자'로 치부한다. 어쩌면 처음에 가고 있던 길이 틀린 길이었을 지도, 이제야 맞는 길을 찾은 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포기도 응원받을 권리가 있다. 겨우 그것도 못 버티고 포기하는 패배자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멋지게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포기도 응원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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