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않게 대학을, 그리고 직장을 연고도 지인도 없는 곳으로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하는 사람이 하나둘 줄었다. 그렇게 이제는 1년에 한 번 이상 연락하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셀 정도만 남았다.
물리적 거리는 사실 핑계에 불과하다. 나는 누구보다 인간관계에 서툴다. 학창시절 몇 사건들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았고, 먼저 다가가는 것도 정을 주는 것도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말했다.
항상 벽이 있노라고. 그 벽을 깨고 스스로를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고. 벽을 깨고 나올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틈조차 보이지 않는 벽때문에 다가서기 어렵다고.
마음이 멀어진 것은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만남도 미룬 내 탓이 가장 크다. 1~2년 정도는 그래도 괜찮다. 그 정도는 어떻게 지내냐고 잘 지내냐고 서스름 없이 연락할 수 있는 정도의 갭이니까. 하지만 2년을 넘어서고 나면, 연락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해진다. '연락해볼까' 생각했다가 어색해서 연락을 포기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서로를 점점 잊어가는 단계에 진입한다. 그렇게 모든것을 공유하던 사이에서, 우연히 만나면 인사조차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안그래도 인간관계에 서툴기만한 내게 '코로나'의 타격은 그 누구보다 컸다. 1년에 겨우 한두 번씩만나던 사람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자체를 하기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연락하는 시간도 줄었다. 기약없이 집-회사만 왕복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이런 일상이 1년간 계속되고나니, 언젠가부터 그저 몇년전의 나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몇년전 사진을 보며, 그때를 추억하고, 그 시절 그 사람을 기억했다.
그러다 마침내, 내 보물함까지 몇년만에 열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여러 주변 사람들에게 받은 편지들을 차곡차곡 모아둔 내 보물함.
그곳에서 10대의 나, 20대 초반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를 함께 했던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편지를 읽다보니 '10대미' 가득했던 순수한 친구들의 편지가 귀엽기도 했고, 함께하던 그때의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이 친구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뭐하고 지낼까 궁금하기도 했다.
보물함에서 발견한 고1 때의 롤링페이퍼
싸운 것도 아닌데 졸업이후로 한번도 연락하지 않은 친구도 있었고,
졸업이후 1-2년은 가끔 연락하고 몇 번 얼굴도 봤지만 그 뒤로 연락이 끊어진 친구도 있었다.
새벽감성이었을까. 그냥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오랜만에 연락해보고 싶었다.
10년전 편지를 핑계로 보내는 카톡 몇 마디, 그리고 연락처마저 찾을 수 없어서 언제 읽을지 모르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남겨본다.
"잘지내? 오랜만에 연락하려니까 어색하다..
몇 년 만에 옛날 편지들 보다가 니가 써준 편지를 보고 어떻게 지내는지, 잘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립기도 해서 이렇게 오랜만에 연락해본다. "
10년전 편지를 핑계로 보내는 카톡 몇 마디
사실 조금 무섭기도 했다. 혹시 내가 누군지 기억조차 못하지는 않을까.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고, 이젠 아무사이도 아닌데 내 연락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내 걱정과는 달리
'연락줘서 고맙다. 너무 오랜만이다 너는 어떻게 지내?'
'너는 요즘 뭐하고 있어? 어디에 있어? '
라는 답들이 온다. 이 친구들과 연락을 한지도, 얼굴을 본지도 5년이 훨씬 넘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겨우 몇 달 만나지 않은 사이처럼,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기약없는 약속일지도 모르는 '올해 안에 꼭 얼굴 보자'라는 약속으로 이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