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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올리스트 한대규 Nov 12. 2023

Brahms Sonata for....Viola?

비올라 소나타 맞나요?



Johannes Brahms

Sonate für Klarinett (oder Bratsche) und Klavier Op. 120


요하네스 브람스

클라리넷(또는 비올라)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작품번호 120 



레퍼토리가 많지 않은 비올라 연주자에게 다른 악기의 곡을 비올라를 위해 편곡하여 연주하는 것은 매우 익숙한 일이다. 바흐의 첼로 모음곡,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수많은 레퍼토리가 비올리스트들에 의해 편곡되어 있고, 나 역시 메인 레퍼토리로 자주 연주하지만 할 때마다 마음 한편엔 늘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아쉬움과 헛헛함을 품게 된다. 이는 그 악기를 위해 쓰인 곡들만 연주해도 평생이 모자란 바이올리니스트나 피아니스트들은 헤아릴 수 없는 애석함이지만 나름의 즐거움과 발견의 기쁨이 있기에 괜찮다. '괜찮다'는 말을 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짠하다.



반면, 다른 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이 작곡가에 의해 비올라 버전으로도 공식 출판된 경우도 있는데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곡이 바로 독일의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의 '클라리넷(또는 비올라)을 위한 소나타 Op.120'이다. 더 이상 곡을 쓰지 않겠다는, 절필을 선언했던 브람스가 펜을 다시 들게 했던 클라리넷 연주자 리하르트 뮬펠트 Richard Mühlfeld. 그는 브람스가 역사에 길이 남을 클라리넷을 위한 걸작들을 남기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케, Herr Mühlfelt. 절필을 선언하고 다시 창작을 하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절필을 선언한 1890년의 바로 다음 해인 1891년에 다시 곡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걸 보면 브람스 이 사람도 참 변덕이 심한 사람이었나 보다. 혹시... 브람스는 P였던 걸까



'클라리넷 삼중주 Op. 114', '클라리넷 오중주 Op. 115', '클라리넷 소나타 Op. 120'. 모두 띵곡이라 차차 소개할 예정. 이렇게 세곡은 클라리넷 연주자들에게 필수 레퍼토리에 해당하는 '브람스 패키지'다. 그중 작품번호 120번인 클라리넷 소나타는 작곡가에 의해 비올라와 클라리넷을 모두를 위해 출판되었다. 클라리넷을 위해 먼저 작곡하였으나 비올라를 위한 버전으로도 출판한 것은 당시에 '이 곡을 제대로 연주해 낼 만한 관악기 연주자'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고(리하르트 뮬펠트 역시 바이올리니스트로 오케스트라에 재직 중 독학으로 클라리넷을 배운 것을 고려해 보면 근거 없는 낭설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작곡가인 브람스는 막상 비올라로 연주하는 것은 너무 어둡다며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했다는 말도 있지만 그럼에도 비올리스트에게 이 곡은 더없이 소중하다. 후... 다시 한번 짠하다.



비록 작곡가 본인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게 이 곡은 비올라, 클라리넷 우열을 가릴 것 없이 공히 잘 어울리며 아름답다. 다만 두 버전의 매력이 다르기에 두 가지를 비교하여 들어보는 것은 흥미로운 감상법이 될 것이다. 시간이 안된다면 비올라를 먼저....



브람스 비올라 소나타는

1번 f minor와 2번 Eb Major 이렇게 두 곡이며 각각 네 개와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곡 모두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폭풍이 휘몰아치듯 격정적이다가도 숨소리조차 내기 조심스러울 만큼 섬세한 순간들이 이어진다. 브람스 인생의 말년에 작곡되었기 때문일까. 투쟁과 기도, 회한과 설렘, 천진함과 능숙함... 공존하기 어려울 것 같은 장면과 감정이 뒤섞인 이 곡은 마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노란색과 파란색이 섞인 기억구슬처럼 다채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길고도 유려한 프레이즈들과 그 사이사이의 기막히게 아름다운 이음새에서 가히 노년에 이른 거장의 내공이 응집된 작품임을 드러난다. 



내가 이 음악을 연주하며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솔직함'이다. 브람스 특유의, 심혈을 기울여 한 땀 한 땀 작곡한 느낌은 여전하지만 그의 곡 중에서 가장 본능적이랄까? 브람스는 큰 콘서트홀이 아닌 작은 하우스콘서트 규모의 음악회를 위해서 이 곡을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절필까지 선언한 마당에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들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싶다. 나이가 들수록 다시 어린아이처럼 자기감정에 솔직해지기 마련이니까.



"Die Musik, welche uns der Meister in seinen beiden Sonaten beschert hat, verzichtet, wohl absichtlich, auf das Gefallen der grossen Menge; um so herzlicher wird die Musik aber von allen Denen gewürdigt werden, welche ihre vielen inneren Schönheiten und Herrlichkeiten verstehen; ihnen bietet sie eine Quelle der reinsten Freuden."
Musikalisches Wochenblatt*, 07.02.1895
"이 대가가 두 개의 소나타라는 형식을 빌어 우리에게 선사해 준 이 음악은 확실히 대중의 호평을 얻기는 단념한 듯합니다만, 이 음악에 담긴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이해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더욱 진가를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이 음악이 가장 순수한 기쁨의 원천을 보여준다는 것을 말입니다."
음악주간, 1895년 2월 7일


독일의 음악신문이었던 'Musikalisches Wochenblatt'에 기고된 이 곡에 대한 평가 중 한 구절이다. Quelle der reinsten Freuden. 가장 순수한 기쁨의 원천. 이 곡이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하나의 메시지를 뽑으라면 나 역시 '기쁨'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살아있음에 대한 기쁨. 사랑했음에 대한 기쁨... 두곡의 브람스의 비올라 소나타의 저변에는 그런 낙관주의와 삶에 대한 예찬이 흐르고 있다. 



'삶은 누추하기도 하지만 오묘한 것이기도 하여

살다 보면 아주 하찮은 것에서 큰 기쁨,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과 만나질 때도 있는 것이다.' 

박완서



문득, 박완서 작가의『노란 집』에 나오는 한 구절이 생각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잠시 시간을 내어 이 음악에 몸을 맡긴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싶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0NTb-96vrUc

비올리스트 앙투안 타메스팃 Antoine Tamestit이 연주하는 브람스 비올라 소나타 1번 2악장 Andante






Musikalisches Wochenblatt*

콘서트와 새로 출판된 곡들에 대한 리뷰 미학적 담론과 에세이 전기까지 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다양한 기사를 다룬 음악신문. 음악학자  Oscar Paul에 의해 출판사 브라이트코프 운 헤어텔에서 1870에 처음 출간 되었으며 주간신문으로서 꾸준히 이어져오다  1906년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 Robert Schumann이 편집장으로 있었던 음악신보 Neue Zeitschrift für Musik에 합병되었다.


글 - 비올리스트 한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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