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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중 인 May 22. 2022

누군가의 딸로 살아가면서 쉽게 꿈꿀 수 없는 이유

세상살이 23년 차의 꿈 찾기 프로젝트 (2021년 2월의 기록)



    51세 이사장과 55세 허사장의 23년 차 딸


    51세 이사장과 55세 허사장은 1997년 1월, 인수합병을 결정했다. 둘은 사내커플이었는데, 이사장은 인수합병 이후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10개월 후에는 처음으로 신입사원이 채용됐다. 그리고 신입이 조금 적응했을 즈음 두 번째 신입사원이 채용되었다. 이후로 신입 공채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고, 4인으로 구성된 기업은 천천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 나는 23년 차 딸이다. 솔직히 신입 시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워낙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인 만큼 내 기억도 같이 증발해버렸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온전히 남기 시작한 건 아마 14년 차쯤 되었을 때였다. 영원한 막내 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어렴풋 깨달았기 때문일까? 나는 나만의 생존 스킬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내 사수는 나보다 2년 빨리 이사장과 허사장의 아들이 되었는데, 그렇게 유능한 사수는 아니었다. 고로, 나는 스스로 할 일을 찾고 업무 스킬을 쌓아야 하는 막내였다.)


    이사장과 허사장은 적당히 보수적이고 또 적당히 개방적인 철칙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부모님에게 충실한 자식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자란 아들과 딸도 제 부모님께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 박혀있다. 하지만 아들과 딸은 자기주장이 뚜렷하게 성장해버렸고, 부모님에게 충실하기 전에 내 행복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이기적인 마음을 키워 버렸다. 순종하기보다는 일단 부정부터 하고 보는, 다소 충실하지 못한 자녀가 되어버린 덕분에 이제 막 25살이 된 아들과 23살이 된 딸은 취업의 문턱에서 두 사장과 아슬아슬한 눈치싸움을 시작했다. 




부모님과 딸의 가치관 차이


    지극히 안정적인 삶의 방향을 추구하는 두 사장과는 다르게, 딸은 고르지 않은 땅을 밟기 시작했다. 딸이 공무원이 되길 바라는 이사장은 '공무원이 왜 좋은가'를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딸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큰집의 누구, 사촌의 누구, 방송에 나온 누구. 이사장이 알고 있는 수많은 공무원들은 안타깝게도 그녀의 딸에게 어떠한 울림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딸은 그들을 보고 '아, 저 길은 내 길이 절대 아니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딸은 어릴 적 이후로 졸업했던 거짓말을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딸의 대학교 졸업이 다가오자 눈에 띄게 불안해진 이사장에게 딸은 "2021년 2학기 휴학하고 공무원 시험 볼 거야~"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제 딸에게 남은 시간은 5개월 남짓. 딸이 가진 확신은 두 가지였다.


    1. 공무원은 나의 길이 아니다.

    2. 나는 돈보다 내 행복이 중요하다.


    - 나는 잔재주 많은 아빠와 잔재주 없는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잔재주 많은 딸이다.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배우기를 좋아했던 나는 공예, 종이접기, 피아노, 서예 등 다양한 재주를 익혔다. 고등학교 3년은 이런 재주를 조금 숨기고 살았다. 입시라는 인생의 첫 관문을 만난 나는 내 재주를 살리기보다는 남들이 다 하는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3년이 지나버렸다. 나는 대학교 원서를 쓰면서 3년간 품었던 기자, PD라는 꿈을 잃어버렸다. 내 성적으로는 절대 넘을 수 없다는 꿈의 학교와 꿈의 학과. 이때부터 꿈 없는 인생이 시작되었다.

    적당히 성적 맞춰 들어온 과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좋은 선배와 동기들, 교수님들. 그 속에 섞여 살다 보니 나도 그들처럼 열심히 잘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과 특성상 공무원이 꿈인 동기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들은 2학년이 끝나자 돌연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대부분의 동기들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나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만 가진 게 없었다. 꿈도, 계획도.

    걱정 많은 엄마, 아빠보다 스무 배 긍정적인 나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조금 느릴 수 있어도 분명 나만의 길을 찾아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재주가 많으니까!


    이제 남은 5개월 동안 딸은 열심히 부모님을 설득할 근거를 찾아야 한다. 딸이 정말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어떻게 할 것인지. 안 그래도 걱정 많은 부모님에게 고르지 않은 땅을 밟겠다는 선언을 해야 하는 딸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딸이 쉽게 꿈꿀 수 없는 이유


    자신만의 생존 스킬을 사용해 23년간 착한 딸로 살아온 딸은, 어느새 착한 딸 역할에 심취해있다. 이사장과 허사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법, 적당히 감출 감정은 감추고 드러낼 감정은 드러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법, 하고 싶은 일을 몰래 하는 법. 이런 스킬만 늘어난 딸은 겉으로는 착한 딸이지만, 속으로는 언젠가 반항할 그날을 기다리는 참을성 있는 딸일 뿐이다.

    딸의 반항은 아마 조만간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이 23년간 참아온 만큼 딸의 인생 전체를 흔들만한 일이라는 점이 이사장과 허사장에게는 크나큰 걱정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게다가 딸보다 두 배 이상을 산 인생의 선배로서,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딸의 꿈은 그들에게 끔찍할지도 모르겠다.


    딸이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아는 이사장은 딸에게 '그건 나중에 일하면서 취미로도 할 수 있어'라는 당부의 말을 하곤 했다. 처음 딸의 꿈이 취미로 치부된 것은 중학교 3학년이었던 딸이 제과제빵을 배우고 싶다며 학교 상담실을 찾아갔을 때였다. 순수했던 딸은 비밀을 보장한다는 매혹적인 말에 넘어가 '제과제빵을 하고 싶어서 관련 고등학교를 가고 싶은데, 부모님이 반대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후로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 이사장은 딸에게 넌지시 '제과제빵은 나중에 취미로 하면 돼'라는 말을 흘렸다. 딸은 상담 선생님에게 참을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고, 이사장에게는 실망감을 선물 받았다.   

    그 뒤로 딸은 이사장과 허사장에게 꿈 얘기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딸이 불안정한 걸음을 걷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딸에게는 상처가 되어 흉터를 남겼기 때문이었다. 딸은 기자와 PD를 꿈꾸던 시절에도 '언론계는 엄청 힘들 거야. 숭고한 직업정신도 필요하지.'라는 말을 들었고, 어쩌면 대학 입시 이후 잃어버린 꿈에 이사장과 허사장은 안도했던 것 같다. 이제 딸이 함께 지낼 사람들 대부분이 공무원을 준비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그 속에서 그들을 따라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섞여있던 것도 같다.


    딸은 그런 부모의 걱정과 기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조금이라도 불안정한 일에 관심을 보일 때면 눈에 띄게 흔들리는 눈이 딸을 쉽게 꿈꿀 수 없게 했다. 착한 딸은 부모의 흔들리는 시선을 읽고는 '근데 이런 점이 별로다~'라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제서야 풀어지는 부모의 두 눈을 보고는 속으로 씁쓸함을 삼켜냈다.



    51세 이사장과 55세 허사장의 23년 차 딸은 처음으로 그들에게 반항하고자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반항은 23살 평범한 대학생이 꿈을 찾는 과정이 될 것이고, 이 과정이 끝나고 나면 모두가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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