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쏟아진다. 방금 계단을 올라온 참이다. 빗줄기는 강하고 굵다. 가방 속에 들어있던 양산을 꺼낸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거친 빗줄기를 견뎌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버스 정류장은 신호등 두 개 너머에 있다. 비가 내렸다 하면 무섭게 쏟아지는 시절이다. 자칫 발이 묶일 수도 있다. 양산을 펴고 쏟아지는 빗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나마 머리와 어깨를 가릴 수 있어 다행이다. 휘몰아치는 바람 탓에 무릎 아래는 속수무책이다. 몇 걸음 만에 구두 안에 빗물이 들어찬다. 납작하고 얇은 구두 안에서 발이 철퍼덕거린다. 발바닥에 힘을 주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며 걷느라 종아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우여곡절 끝에 잡아탄 버스 안에서 살펴보니 구두 앞코가 들려있다.
며칠 후, 구두를 신어야 하는 날이다. 조심스러운 자리이므로 깨끗하고 단정해야 한다. 제법 걸을 수도 있으니 편안할 것도 조건이다. 신발장을 훑어본다. 신발이 빼곡하게 들어차있긴 했지만 이거다 싶은 건 없다. 다시 한번 살핀다. 코가 벌어진 구두를 신고 나갈 수는 없다. 구석에 굽 높은 구두가 눈에 띈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어본 지 십 년은 족히 된 것 같다. 천천히 발을 넣어본다. 그런대로 잘 맞는다. 조금 망설여진다. 뾰족하고 날렵한 형태에 한동안 신은 적이 없는 하이힐이다. 높은 굽이라니, 저걸 신고 종일 돌아다니다간 며칠 동안 고생할 수도 있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래, 말리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그런데 예쁘다. 신발장 앞에서 구두 신은 발을 내려다본다. 좁은 현관 안을 이리저리 걷는다. 키가 자란 느낌이다. 세상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겠다. 게다가 하이힐을 신은 발이 예뻐 보인다. 깨끗하고 단정해 보이는 데다가 불편한 것도 없는 듯하다. 기세 좋게 신고 집을 나선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게 만용이었음을 알아차린다. 구두 안에서 발가락들이 좁다고 아우성이다. 부드러운 줄 알았던 바닥은 미끄럽고 딱딱하다. 십수 년 동안 납작한 구두와 운동화에 길들여져 있던 두 발이 비명을 지른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걸을 수 있을지 궁리하느라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다. 예정되었던 만남에 대한 기대와 설렘은 간 곳이 없고 낭패감만 커져간다. 키가 자란 느낌도 예뻐 보이는 듯했던 모습도 예상되는 불편함을 못 본 척하는 데 동조했을 뿐이니 그날의 참변은 바로 내 탓이다. 돌아오는 길에 언젠가 본 영화를 떠올린다. 작은 구두를 신고 런던 관광을 한 프랑스 외교관이 초대받은 성에 도착하자마자 집사에게 따뜻한 소금물을 부탁하는 장면, 난처했던 그의 표정이 우스웠다. 버스 안에서 웃음을 참느라 고역이 하나 더해진다. 집은 언덕 위에 있다. 오르막이 시작되는 삼거리에 다가갈수록 구두를 벗어던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모퉁이 집 대문이 열리는 기척을 들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집에 도착해 신발을 벗어보니 발이 빨갛다. 영화에서 본 외교관의 퉁퉁 부은 발이 다시 떠오른다. 또 한 번 웃음이 터진다. 며칠 후 다시 신발장 문을 연다. 그날 잘못 신고 나갔던 구두가 다소곳하게 앉아 있다. 다시 봐도 예쁜 건 마찬가지다. 구두를 내려놓고 다시 신어 본다. 또 한 번 시야가 달라진다. 고작 몇 센티미터에 세상이 달라 보이니 이건 마법이다. 이제는 속지 않는다.
십여 년 전 오사카의 붐비는 전철역이다. 눈부신 햇살이 천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썰물이 빠지듯 밀려나간다. 낯선 도시의 한 전철역에서 출구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중이다.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건 바로 그때다. 주변의 인파에는 아랑곳없이 마주 보고 서 있는 남녀다. 두 사람은 막 헤어지려는 참이다. 남자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여자 역시 같은 방식으로 예를 표한다. 예의를 갖추었으나 온기가 없으니 연인 사이는 아니다. 애써 불편함을 누르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린다. 방향을 어림짐작해 걷는다. 좀 전의 그 여자가 몇 걸음 앞에서 걸어간다. 걸음걸이가 차츰 느려진다. 어, 여자의 몸이 이상하다. 어깨가 기울어지고 몸이 흔들린다. 굽 높은 샌들에서 발이 미끄러져 나온다. 발뒤꿈치가 그대로 바닥에 닿는다. 여자는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안짱다리가 된 채로 비틀거리며 불안하게 걸어간다. 오가는 사람들이 흘깃거린다. 누군가가 다가간다. 괜찮으냐고 물어보는 것 같다. 부축해 주려는 듯 그녀를 향해 손을 뻗는다. 여자는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선다. 고개를 숙인다. 완고한 사양이다. 잠시 후 여자가 다시 걷기 시작한다. 구두를 벗어 한 손에 모아 쥔 채다. 맨발이지만 곧은 자세에서 단호함이 엿보인다. 여자는 마치 변신 로봇 같다. 그렇게 정중하고 차가운 인사. 한낮의 환한 전철역에서 목격한 믿을 수 없는 사건.
여자가 벗어든 신발은 발뒤꿈치에 끈이 달린 노란 슬링백 슈즈다. 너무 높지도 얕지도 않은 높이의 굽에 그날 하늘에서 쏟아지던 햇살만큼 화사하고 날렵하다.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 손에 모아 든 구두가 흔들린다. 마치 춤을 추듯 경쾌하고 가볍게 흔들리는 구두를 바라보며 문득 그녀가 모든 걸 벗어던지고 싶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 구두는 그녀에게 화장 같은 것이었으리라. 화창한 늦봄의 어느 날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드레스와 연노랑 카디건, 그리고 노란 구두로 무장했던 그녀가 구두를 벗어던졌다. 촘촘하게 엮은 매듭이 끊어진 듯 묶인 동아줄이 풀어진 듯 홀가분해 보인다. 이제 구두 같은 건 필요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녀는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구두를 신고 위태롭게 몸을 흔들던 그녀는 비로소 편안하다. 낯선 도시의 전철역 한 복판에서 갈 곳을 제대로 찾지 못해 허둥대던 나는 그녀가 부럽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녀의 구두처럼 노란색은 아니지만 내게도 끈이 달린 구두가 있다. 친구가 휴게실에서 기다린다는 연락이 왔다. 지나는 길에 얼굴이나 보고 가려고 들렀다는 그녀는 아이와 함께였다. 근무 시간이었으므로 다음 약속을 정하고 곧 헤어졌다. 다시 만난 날, 친구는 마주 앉자마자 대뜸 그날 신었던 구두가 어떤 거였느냐 물었다. 아이가 돌아가는 내내 구두 얘기를 했단다. 아줌마 구두 예쁘지? 소리도 났어. 아줌마가 걸어가는데 구두가 소리를 내며 따라갔잖아. 아이가 나중에 커서 자기도 그런 구두를 신을 거라며 눈을 반짝였다고 했다. 그날 퇴근 후 신발장 앞에서 구두를 다시 신어 보았다. 진한 붉은빛의 에나멜 구두다. 빛을 받으면 숨어있던 빨간빛이 반짝이며 도드라졌다. 구두를 신고 걸으면 또각또각 소리가 났다.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말하는 것 같았다. 뾰족한 앞코, 흠집 없는 에나멜의 광택, 적당히 올라간 뒷굽만큼 나도 강해졌다. 그날 이후 유난히 기운이 없거나 단호함이 필요한 날이면 그 구두를 찾아 신었다. 나도 모르게 구두에 의지했다. 그 작은 아이가 구두의 힘을 알아본 게 신기했다.
젊은 시절, 맞닥뜨린 세상이 어쩐지 불편했다. 옷과 구두를 선택하는 것이 무기를 고르는 것 같았다. 뜨거운 주형에 스스로를 욱여넣거나 불과 물로 담금질하는 날들을 건너가면서 기댈 것이 고작 구두였던 시절이었다. 구두 굽이 낮아질수록 삶이 편안해진다는 걸 알아차린 건 한 세월이 지난 후였다. 더 이상 세상을 내려다볼 필요도,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소리를 내어 알릴 필요도, 현혹하는 반짝임으로 치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될 즈음 나는 나이 든 여자가 되었다. 세상이 변한 게 아님을 새삼 느낄 때마다 내가 신었던 것과 같은 구두를 신겠다며 눈을 빛내던 아이를 떠올려본다. 지금쯤 어른의 세계에 들어섰을 아이에게 이 세계가 조금 더 친절하기를 바란다. 신발장 안에 잊힌 채 놓여있던 구두 속에 겁도 없이 발을 집어넣었던 여자와 빨간 하이힐을 신고 용기를 냈던 여자 사이에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었던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