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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양동 고양이

노랑이의 10월 21일

밥셔틀 멤버로서 개근상을 자랑하는 노랑이에게 이상징후가 나타난 것은 몇달 전이다. 처음엔 조그만 뾰루지가 오른쪽 다리 위쪽에 났다. '설마 저게 어떻게 되지 않겠지?' 하는 기대도 잠시, 빨간 뾰루지는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어느 순간 징그러운 혹이 되어 덜렁거리기 시작했다. 약간의 피가 맺혀 있어서 더욱 아파보였다. 야생동물에게 도움의 손길을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 슬슬 날은 추워질 것이고 저대로 혹을 놔둔다는 것은 걍 그렇게 죽어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늘이 무심치 않았는지 옆동 캣맘 아줌마께서 생포만 해주면 병원비와 입양을 생각해본다 하셨다. 그간 노랑이 밥을 특별히 도맡으셨던 옆동 아줌마는 녀석과 꽤 정이 들었나보다. 하긴 노랑이는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자고 일어난 것같이 늘 뚱한 얼굴에 밥은 얼마나 똑부러지게 먹는지 옆에서 오도독 오도독 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없던 입맛도 살아날 지경이다.


하지만 야생고양이를 잡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나 그 녀석이 나타나는 곳은 주차장 옆 잔디밭이라서 마땅히 덫을 놓고 숨길 만한 곳도 없다. 포획틀이 아니면 무엇으로 잡나.... 급한 대로 케이지를 들고 나가보기로 했다. 케이지에 밥을 놓아서 익숙해지면 케이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그러면 뭔가 일을 도모할 수 있겠지..? 음... 그래.... 하지만 노랑이가 아무리 순해보여도 길냥이의 촉이 있다. 케이지를 힐끗보더니 콧방귀를 뀐다. 하긴 내가 노랑이라도 갑자기 케이지를 들이댄다고 들어가겠는가? 이빨도 안먹힐 것이다. 하지만 나도 나름대로 믿을 게 하나 있긴 하다. 그것은 노랑이의 식탐이다. 녀석의 밥을 조금씩 줄여나간다면 결국은 배가 고파 케이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날, 케이지를 들고 생각에 잠겼다. 노랑이가 케이지에 들어가도 입구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노랑이는  머리만 쏙 넣고 더이상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엉덩이를 내놓고 있다가 내가 한발자국만 옮기면 잽싸게 도망을 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녀석이 바로 도망갈 수 없도록 하는 것이지... 인간은 진화하는 동물이다. 이제 두번째 시도... 방충망을 사다가 케이지 앞에 길다란 통로를 만들어 이어붙여 보았다.


셋째날... '나는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하는 자괴감에 사로잡혔다. 피곤하기도 피곤하고 할 일이 산더미인데  기다랗게 만든 케이지를 들고 잔디밭을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가끔 지나가는 할머니, 아줌마, 아저씨, 아이들은 나를 구경하다가 가곤 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 만큼은 꼭 성공을 시켜야만 한다. 한편 노랑이도 지친 모습이다. 그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그놈의 케이지에 들어갔다 나갔다를 며칠간 했기 때문이다.


잔디밭에 적막이 흐른다. 10월도 한창이구나... 10분만 더 있다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들어가려고 생각했다. 별 기대없이 케이지 입구에 사료를 뿌렸다. 그랬더니 아니, 이 녀석이 제법 혹하는 얼굴이다. 그래, 들어가라 들어가... 기다란 망에 얼굴을 들이민 노랑이는 점점 케이지 안에 넣어둔 사료를 향해 한발을 옮겼다. 이제 한발만 더 들어가면 안정권이다 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뇌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번개처럼 날라서 광인같은 모습으로 케이지 입구를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성...공...


모든 일엔 끝이 있다더니 정말 하늘에 감사드린다. 이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실 지금 이순간도 꿈인가, 현실에 일어난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포기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션 임파서블이 성공으로 마무리 된 것이다.  


노랑이의 혹은 다행히 양성종양이었다. 병원으로 달려가 제거수술을 받고 다양한 약을 접종하고 양쪽 귀에 자리잡은 진드기도 박멸하고 퇴원을 했다. 앞으로 옆집 아줌마네 집에서 일정기간 적응이 필요하겠지만... 그 또한 끝이 있겠지... 설마 밑도끝도 없이 잔디밭에서 구르는 것만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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