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우리과는 정말 별들의 무대였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우리 동기 중에는 정말 미인이 많았다. 믿거나 말거나 우리학교에는 4년에 한번씩, 불어과와 번갈아가며 우리과에 미녀군단이 입학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해가 바로 그 전설의 해였던 것이다. 하필... 굳이...
오드리(가명, 본인이 장난 삼아 미국에 이민 가면 쓰겠다고 한 이름이다)는 그중에서도 첫째와 둘째를 다투는 미인이었다. 하긴 5번째까지도 학교에서 꼽힐 정도로 미인들이었으니 오드리의 미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드리는 항상 잠깐 수업에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지곤 했다. 수많은 미녀들의 틈바구니에서 지친 나는 동아리 활동에 매진했고 오드리는 연애활동에 몰두했다.
오드리와 친해지게 된 것은 3학년 때였다. 고학년이 됐으니 왠지 도서관 정도는 다녀줘야 할 것 같아서 최소 사시준비생들만 자리를 잡는다는 도서관 3층에 도전했다. 하지만 새벽에 절대 일어나지 못하는 나는, 포부와 달리 항상 메뚜기(도서관 자리가 없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학생) 신세였다. 그런데 오드리도 가끔 메뚜기를 하러 나타나는 것이었다. 사실 오드리는 친화력이 워낙 좋아서 나와 데면데면했던 친구는 아니었다. 둘 다 성격상 붙어 다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오드리와 가깝게 지내면서 그저 성격 서글서글하고 예쁜 친구라 여겼던 나의 생각은 곧 달라졌다. 오드리는 얼굴보다 마음이 더 잘난 친구였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랐다.
때는 바야흐로 오렌지족이 득세하고 자본주의가 들끓던 1993년.... 압구정동 보디가드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친구들에게 삐삐를 치면서 으스대는 것이 가장 재밌다 싶은 시대였다. 선배들은 은근슬쩍 아빠 자가용을 끌고 다니기 시작했고 나와 내 동기들은 강남 나이트에 가서 기죽지 않으려고 용돈 모아 캘빈 클라인 청바지를 샀다. 어느 동네에서 살고, 있어보이는 게 최고인 시대였다. 오렌지족을 흉내내는 구름같은 선배와 동기들이 차에 오드리를 한번 태워보려고 아주 난리가 났다. 오드리는 당시 '킹카'라고 불리던 잘나가는 선배를 만날 때도 있었지만 정말 구린 또라이를 만날 때도 있었다. (그때는 엄청나게 어른처럼 보이던) 직장인을 만날 때도 있었고 어린 나이에 장사를 하며 다른 세계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나 같으면 보기 그럴싸하고 인기있는 선배를 만날 것 같은데 오드리에겐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았다. 물론 오드리가 순탄치 않은 연애사에 시달릴 때면 왜 저러나 싶을 때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오드리는 배짱이 무척 두둑한 인물이었다. 일단 알아보지 않고 어떻게 사람을 판단하냐는 식이었다. 있어보이는 게 최고인 세상에서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거리낄 거 없는 오드리 앞에서 있어보이려던 상대방들은 한방 맞고 휘청하기 일쑤였다. 그러면 오드리는 그상황을 개그로 승화시켜 상대가 배꼽이 빠질 때까지 웃겨주곤 했다.
그런 오드리와 좀더 오랜기간 친구가 되었다면 나의 인생과 사회생활이 더 편했을지 모른다. 확실히 오드리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었고 항상 내가 보지 못한 이면을 보았다. 하지만 나에게 훈계하거나 조언하는 일도 없었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던지는 게 전부였다. 그걸 못 알아들은 어리석은 내가 문제긴 했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조금이나마 공감력을 발휘할 수 있기까지 나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을 천부적으로 타고난 오드리는 참 대단한 친구였다.
오드리는 정말 무난하고 보통인 (무엇이 보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남편을 생각하면 그냥 '무던하고 온화하다'는 인상이 떠오른다) 남자를 택해서 결혼을 하고 미국 이민길을 떠났다. 서로 가끔 편지를 썼고 이메일과 PC통신쪽지(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친구는 미국에 적응하느라 나는 직장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기는 시기가 왔다. '곧 연락이 오겠지...' 하면서도 그저 생각만 하면서 시간이 지나버렸다. 우리와 친했던 한 선배는 내가 오드리를 찾아보겠다고 하면 "넌 걍 짤린거야~~" 하면서 놀려댔다. '흥! 오드리한테 30년 전에 짤린 건 선배시겠지!'
또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나의 016 핸드폰 번호를 010과 네자리로 바꿔야 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오드리와 최후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이후 몇해 동안 새 핸드폰 번호로 연결되는 서비스를 이용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끝나고 말았다.
오드리야,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연락 좀 해다오! 연락이 끊겼던 그때가 2001년이었는데, 혹시 너 그 유명한 9.11 때 어떻게 된 건 아니겠지? 이런 나의 망상을 비웃기 위해 "잘 지냈냐? 오늘따라 과자가 꼬소하다~~"며 고소미를 와사삭거리며 나타나길 계속적으로 기다려 보련다. 모오오땐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