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고픔의 맛>에서 슬기의 배고픔은 어떤 맛이었을까
슬기
오빠가 있어야만 배가 불러. 다른 사람들은 물과 같아서 아무리 들이켜도 금방 배고파지거든. 근데 오빠가 썩어버리면, 그럼 나는 어떡하지?
슬기가 곰팡이가 슬어버린 빵을 만지작거리다 쓰레기통에 버린다. 반석이 그런 그녀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본다.
-<배고픔의 맛> 시나리오 중 일부
또 한 편의 영화 만들기가 끝났다. 어쩌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찡찡거리지 않았다. '찡찡거린다'는 말이 이제는 멀게만 느껴질 정도였다.
재작년, 그러니까 2019년 11월, 나는 단편영화 한 편을 찍는 과정 중에 있었다. 멍청하게도 23학점이나 신청해버려서 화, 수, 목요일은 아침 9시 반에 시작해 저녁 7시 반에 끝나는 일정 중에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시나리오 회의를 하고, 배우들을 만나고, 로케이션을 찾아 해매고 하다 보니, 이틀, 사흘 밤을 새우는 것은 2주일에 한 번쯤 있는 일이 되었다. 힘들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대곤 했었다. 1년이 지나고, 조금 더 지혜로워진 나는 15학점만 신청했고 학교 정규 과정을 마무리하는 졸업 작품을 찍기로 결정했다.
무슨 영화를 찍을까 고민했다. 당시 찍고 싶은 영화가 특별히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제는 연출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닌, 관객과의 소통과 나만의 스타일을 둘 다 챙길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단편영화에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는 무엇이고, 단편영화라는 매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서사를 표현하고 싶었다. 관객이 영화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장르였다. 장르란 것이 본디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들이 켜켜이 쌓인 끝에 공통된 특징들을 묶은 것이기에, 나는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장르물을 찍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내가 쓴 시나리오들은 90%가 드라마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나마 장르화 시킬 수 있는 시나리오가 있는지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2년 전에 써두었던 비밀스러운 시나리오, <배고픔의 맛>을 찍기로 했다. <배고픔의 맛>은 남자 친구인 반석이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하는 주인공 슬기의 이야기로, 슬기에게 질려버린 반석이 떠나버리자, 검은 토를 휘갈긴다는 내용의 아스트랄한 시나리오였다. 이 이야기는 18년도에 5분 정도의 러닝타임에 맞춰 쓰여진 이야기였다. 비현실적이며, 알레고리컬하면서 동시에 그로테스크한 이 시나리오를 5분 분량에서 15분 분량으로 늘리는 과정에서 슬기를 더 본격적으로 괴롭히는 ‘혜진’이라는 인물이 추가됐고, 슬기와 헤어지고 싶은 반석과 슬기의 지리멸렬한 식사 씬, 슬기가 토하는 씬은 ‘호러’에 걸맞게 수정되었다. 그리고 슬기가 검은 토를 하는 장면보다 더 그로테스크한 결말 씬까지.
이 시나리오는 배우들 사이에서 기피작이었다. 고생할 것이 뻔하고, 철저하게 망가질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것이 충분히 예측 가능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가 확실했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스탭들과 배우들의 '왜 이런 영화를 굳이 돈을 들여 찍으려고 하냐'는 질문에, 2019년 2월에 헤어진 P의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 사는 P와 나는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었기에, 내가 영화를 전공하기 위해 학교에 다니면서 더욱 만나기 힘들어졌다. 학비와 생활비, 직장 생활을 할 때 거하게 들어두었던 암보험과 생명 보험비를 겨우겨우 감당해내던 나는 P가 한국에 왔을 때 지낼 숙소 제공을 위해 돈을 쓰거나 내가 일본으로 갈 비행기 값을 내기엔 턱없이 가난했다. 오랫동안 영상통화와 텍스트로만 연락을 하던 우리는 2018년 여름, 뉴욕을 여행하기로 했다.
통장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모아 계획한 여행이었다. 너무도 오랜만에 만나는 P의 얼굴을 상상하니, P를 만나기 며칠 전부터 난 잠을 이룰 수 없어 팔 굽혀 펴기를 하며 나를 지쳐 잠들게 했다. 그리운 나날을 보내고 P를 호텔 로비에서 만났을 때는 정말 심장이 터져버리는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대강은 알 수 있었다. 다만 오랜만에 만난 P는 같은 외형을 취하였어도 이미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닫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을 뿐.
첫날, 둘째 날,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진 P의 모습이 더욱 눈에 띄었다. 주절주절 떠들어 대던 나를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눈빛으로 보거나, 내가 이를 지적했을 때, "왜 이미 알고 있는 말을 해대냐 (Why are you preaching to a choir?)"고 불만스럽게 말한다던지, 별 사소한 것들을 두고 언쟁을 했다. 그러한 언쟁의 기운이 감돌 때마다 나는 P를 보지 못한 나날 동안 얼마나 P를 그리워했는지를 계속해서 상기시키려 노력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였다. P와 J가 아닌 PJ인 '우리'가 지금 이곳 같은 곳, 같은 시간에 있다고, 1,400킬로미터가 아닌 50센티미터 안에, P와 J가 같이 있다고, 그렇게 되새겼다.
많은 계획들이 있었고, 겨우, 기어이 그 계획들을 실행에 옮겼다. 정말로 겨우겨우 해냈다. 선상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뉴욕의 야경을 보았고,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관람하고, 맨하탄 거리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나는 계속 불안했다. 나와 P는 계란 껍데기 위를 걷고 있었고, 나는 껍데기가 깨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렇게 여행의 마지막 하루 전 날, 브루클린 다리를 걷게 되었다. 다리 위를 걸으며, 우리는 어김없이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 언쟁을 벌였다. 나는 잠시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고 5분 간 노래를 들으며 화를 식혔다. 내가 그런 꼴을 하는 동안 P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전혀 모를 일이다. 노래를 하나 반 정도를 듣고 다시 P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정말로 그 짧은 0.5초도 되지 않는 순간, P가 녹아내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정말로 P가 녹아내렸다. 바닥을 보았을 때 녹아내린 P의 슬라임 따위는 보이지 않았고, 다시 멀쩡해진 P의 얼굴이 보였다. 이런 걸 두고 '정이 떨어진다'고 표현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다시 P와 J가 되어 다리 위를 걸었다. 나는 내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게 P에게 말했다. 너를 보지 못하는 동안, 나 혼자 퇴근하는 길, 바닥에 주저앉아 너를 그리고 그렸던 그 날들을 내가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아무리 그 공허함을 채우려 많은 사람들 틈에서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려 했는지, 그리고 그 시간들은 절대로 주린 나의 허기를 달랠 수 없었다고, 너만이 유일하게 나를 배부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들은 물이고, 너만이 유일한 음식이라고. 그런데 왜 지금의 너는 썩은 음식이 되어버려 물보다 못한 사람이 된 것이냐고.
P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6개월 정도가 지난 2019년 2월에 나는 P와 헤어졌다.
슬기는 P와 나의 관계에 있어 나의 분신이었다. 동시에 슬기의 남자 친구인 반석은 P의 분신이었다. <배고픔의 맛>은 슬기롭지 않은 슬기와 반석처럼 단단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반석의 이야기이면서 P와의 관계에서 절박하고 간절하게 그 관계를 붙잡고 놓지 않으려 했던 나의 이야기였다. 이야기 속에서 식사는 관계를 의미했기에 슬기는 반석과의 식사에 집착했다. 슬기가 반석과의 식사에 집착하는 만큼 반석은 슬기와의 식사를 기피했다. 슬기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토를 하기만 했다. 반석은 슬기에게, 우유부단하게나마 이 관계의 종말에 대해 진실을 말하고 싶어 했으나, 슬기는 이를 거부하고, 결말부에 이르러서야 슬기는 관계의 종말을 직시하고 진실의 열매를 먹는다. 슬기는 비로소 그녀가 채울 수 없었던 배고픔을 맛본다.
나는 이 이야기가 좋았다.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떠나 버린 P를 그리워하는 만큼, 나는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절박했다. 덕분에 캐스팅에서의 문제, 제작비에서의 문제, 제작 여건과 촬영장에서의 모든 소음을 무시한 채, 영화 만들기라는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있었다. 결국에는 진실을 깨닫게 되는 슬기의 이야기를 다 풀어내야만, 이 영화를 다 만들어야만, 정말로 끝나버린 그 관계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싶어서. P를 그리워했던 만큼, P와의 추억과 P를 향한 그리움에 묶인 J를 놓아주고 싶었다. 시간조차도 해결하지 못한 이 문제가 영화를 찍는다면 해결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촬영이 끝나고, 후반작업이 끝나고, 영화가 완성되었다.
물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어느 하루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리고 어김없이 P에 대한 기억은 나를 괴롭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빈도는 차차 잦아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P에 대한 생각은 나를 아프게 했다. 그럼에도 영화가 완성되었고, 새로운 경험과 배움, 그리고 성취감이 있었다. P는 없었지만, 영화는 남았다.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관두지 않고 야간 대학 내지는 사이버대학으로 학사를 따고, 대학원으로 학벌을 세탁하려고 했던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P의 말에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예술대학교에 왔고, 영화를 만들었고, 영화를 내 곁에 두었다. 그러나 그곳에 P는 떠나고 없었다.
앞으로 다음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다른 이야기를 써내기 위해서는 P를 계속 그리워해야 할까. 과연 P를 그리워하지 않고도 나는 영화 만들기를 계속해나갈 수 있을까. '본업으로는 번역 내지는 통역을 하고, 취미로 영화를 할 수 없냐'는 친구의 말에 '영화는 육아와도 같아서 내가 줄 수 있는 그 이상의 관심과 노력을 준다 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던 적이 있다. P를 더 이상 그리워 하지 않아도, P를 그리워한 만큼의 간절함으로 계속 영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나도 <배고픔의 맛> 속 슬기처럼 내 맘을 들여다 봐줄 수 있는 작가와 연출자가 있었더라면. 그러면 좋을 텐데.
슬기의 배고픔은 어떤 맛이었을까. 지금 내 입에 느껴지는 역한 그 맛을 그녀도 맛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