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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Stout Apr 09. 2021

<배고픔의 맛> 프로덕션 리포트

스스로 평가해본 나의 프로덕션

1. Pre-production


    <배고픔의 맛>은 2018년, 1학년이었을 당시, 5분 영화를 위해 구상했던 시나리오였다. 이미 동기들이 학교 영화과 홈페이지에 올린 시나리오들을 주루룩 읽어보았을 때, 내 시나리오가 채택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의 18학번 동기들은 대체로 연출자들만 즐겁거나, 양산형 단편영화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시나리오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녹여낸 것이었다. 실제로 2018년도 여름, 지금은 EX가 된 나의 전 애인과 뉴욕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일본에 살고 있었던 그 사람과의 장거리 연애 전선은 내가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워져 만남이 자연스럽게 줄어듦에 따라, 혹은 다른 이유들로 인해 난기류를 만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하지만 서글프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은 변해있었다. 내가 변한 것인지, 상대가 변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변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19년 2월 경, 뉴욕 여행 이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나의 연애는 끝났다. 오래전 이미 직감하기는 했지만, 내가 붙잡고 있던 것이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애처롭게 느껴졌다.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던 이야기.

    3학년이 되어, 졸업영화를 기획하던 도중, 부천영화제에서 주최한 환상영화학교라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장르 영화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곤 생각해보았다. 그래, 장르 영화를 해보자. 5분 영화로 기획했었던 <배고픔의 맛>을 공포영화로 바꿔서 제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남자와 여자가 식사를 하며 말다툼을 하다, 여자가 이별통보를 받고, 검은 토를 한다’는 포맷의 5분 분량의 시나리오를 공포라는 장르로 변환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나의 스페셜리티라고 부를 수 있는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장르는 공포 혹은 스릴러임이 분명했다. 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역겹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주인공이 얼마나 처절하게 애인에게 집착하는지를 보여주며, 그것이 공포 어린 광기로 치닫는 이야기를 구성했다. 물론 주변의 도움도 많이 받았기에 가능했다. 특히 지도 교수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아쉽게도 장르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다른 나의 또래 영화인 친구들은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서사의 구조 역시도 잘 알지 못해, 그들의 피드백은 도리어 나의 시나리오를 더 구리게 만들곤 했었다. 촬영 이틀 전까지도 교수님과 만나 시나리오를 고치던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로 다른 친구들의 말을 듣고 고민했던 것이 시간낭비로 느껴질 지경이다.

    <배고픔의 맛>에서 나오는 반석과 슬기의 인물 세팅은 전반적으로 <미드소마>, <안티 크라이스트>에서, 그리고 귀신의 경우 <마터스>에서 많이 참고했다. 남녀 사이의 뒤틀린 관계를 음식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설명하고자 했다.

    다행이도 촬영자와의 대화는 수월했다. 평소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지만 개성 있는 영화를 좋아하고, 부천영화제에 상영되는 영화들을 좋아하는. 같이 작업하기 쉬운 촬영자였다. 다만 콘티,  스토리보드 파트에 대해서는 굉장히 방어적으로 접근했는데, 이는 서사의 컨셉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 촬영자는 콘티에서도 스타일리시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나는 영화가 너무 이미지와 스타일의 과잉으로 여겨질까 우려하였다.

    소칭 말하는 '풀바바OSOS' (풀샷 / 바스트샷 / 바스트샷 / OS샷 / OS샷) 식으로 가는 것보다는 대화 씬의 경우, 재미없을 정도로 앵글을 단순하게 구성했고, 식사 장면이나 혜진의 죽음을 목격하는 씬의 경우, 앵글을 다양하게 구성했다. 이 모든 게 고루하고, 소비적인 반석과 슬기의 대화를 극대화시키는 반면, 이들이 행동으로 옮기는 이벤트, 즉 식사나 가위눌림, 귀신 목격 등의 씬들은 장르성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미술에 많은 신경을 썼다. 소위 말해, '짜쳐'보이는 순간부터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의도한 대로 모든 것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집’을 상징하는 반석은 액자에 걸린 흑백 사진들로 구성하고, 화장실에 놓여 있는 화분과 그림, 침실 벽에 있는 꽃, 옷장 안의 패브릭 등이었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인물의 의상, 공간 컨셉을 구축하는데 미술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2. 역할 분석 및 평가


    나는 개인적으로 하는 일을 더 좋아하고 잘하지, 함께 하는 일을 잘하지는 못한다. 그렇다 보니, 배우들을 리더십 있게 이끌어나가는 부분은 조연출이 대부분 담당하곤 했었다. 하지만 저번 1학기 때, 졸업영화 시간에 배운 연기 연출 이론을 다양하게 시도해볼 수 있었다. 카메라 뒤에서 배우들에게 “이런 상황이라고 상상해보세요”라는 형식의 디렉팅을 주로 시도했다. 비단 극 중 상황과 연관이 있는 예시들 뿐만 아니라,

    “지금 오토바이 휠이 휘었어요. 그래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려하는데, 옷의 지퍼가 끼어서 안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낼 수가 없습니다. 지금 너무 짜증이 나 있어요. 밖은 춥고, 차가 쌩쌩 지나다니고. 소리를 크게 질러버리고 싶지만,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싶어 소리를 크게 지를 수가 없네요. 이런 상황이라고 생각해보시고, 레디, 액션!”

    물론, 나의 부족함 때문에 3 명의 배우 모두가 이러한 디렉팅을 잘 소화해낸 것은 아니었다. 주로 혜진 역의 배우가 이러한 디렉팅이 잘 맞아 들어갔고, 슬기 역, 반석 역할 배우의 경우에는 이러한 디렉팅보다는 극 중 상황을 다시 상기시키거나, 인물 캐릭터 빌딩을 위해 나눴던 대화를 다시 하는 것이 더 잘 통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작년과 비교해본다면 실로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가 없다. 남들에게 뭘 시키는 것을 못하는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그것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들이 연기하게끔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어느 정도 얻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의를 두는 바이다.


3. 제작 과정 평가


    다만 작가로서의 결과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표한다.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힘을 많이 쏟았는데, 여전히 단편영화에 걸맞은 서사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럽다. 15분 내지는 2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소화해내지 못하는 서사의 길이, 내지는 구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편집하는 과정에서 내리 나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래도 복잡하고 어려운 인물들이 나오는 복잡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과 캐릭터 빌딩에 대한 논의, 그리고 리허설 등에 대한 부분은 순조롭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이런 부분에서는 여전히 강점을 발휘하는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4. 작품 결과 평가


    결과적으로 말해, 만족스럽다. 방어적인 콘티, 아쉬운 연기, 다소 삐걱거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서사구조에도 불구하고,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그로테스크함, 처절한 인물이 그려나가는 사투와 이질적인 집안 구조 등이 영상 내에서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물론 아쉬운 부분이 있었음을 감출 수는 없지만, 단점을 감추려들기보다는 장점을 더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편집, 음향, 음악 등 포스트 프로덕션에 집중했다.


5. 총평 -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사실 저는 제가 그렇게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들여 해낸 일들을 큰 노력 없이 얻어내곤 했었고, 노래, 작사, 춤, 언변, 외국어, 글쓰기 등의 많은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위의 친구들처럼 만만하지 않아요. 마치 제가 모질게 노력하여 얻어내려 했었던 첫사랑의 돌아선 마음 같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그에 대해 생각을 깊이 하고 신중하게 접근해도 제 뜻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참 어려워요, 그래서.

    다양한 분야에 재능이 많음에도, 저를 봐주지 않는 영화에 계속 머물고자 하느냐 궁금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몇 년 간, 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한 이후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왜 영화일까?

    처음에는 정말 생각이 많았습니다. 사실 종합예술이고 뭐고를 떠나 영화는 정말 제 적성에 맞지 않습니다. 제가 잘한다고 언급했던 것들은 모두 혼자 하는 것들이에요. 저는 단체 활동에 유독 약한 사람입니다. 저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을 쉽게 믿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제가 가진 것에 비해 자존감도 상당히 낮지요. 영화는 그런 제게 정말로 힘듭니다.

    처음에 영화를 하게 된 이유는 누군가가 해주었던 말 때문이었습니다. 한 때 건축가가 되고 싶었던 그 사람은 그저 삶이 허락하는 대로 자신을 내버려 두었더니, 어느새 꽤 월급도 잘 받는 영어 선생님이 되어있었다고 말했지요. 그리고는 제게 자신처럼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고요. 당시 회사를 다니던 저는 야간 대학을 다닐까, 사이버대학을 빨리 마치고 대학원에 가서 학벌 세탁을 할까, 고민을 하다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그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학교에 들어온 이후, 자신처럼 되지 말라고 했던 사람은 제 삶에서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 될 필요도 없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영화를 하고 있네요. 어쩌면 영화는 첫사랑처럼, 어느 순간에는 영화가 이러해서, 저러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일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여전히 영화는 너무도 어렵네요.

    서사가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그 무언가, 그리고 그 어떠한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단순히 3년이라는 길면서도 짧은 시간에는 결코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이네요. 아무리 절 인정해달라고 애원해도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2019년도에 찍은 단편영화 제작 이후, 2020년에는 정말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여전히 말이 많고, 여전히 오해와 미움을 받기 싫어 주절주절 설명하기에 바쁘지만, 정말 많은 배움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좋은 영화에 점점 더 다가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 안에서 제게 큰 도움을 주신 지도교수님께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합니다. 항상 시니컬하게 별일 아니란 듯 말씀하시곤 하시지만, 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심성이 순수한 사람들이라고 전 믿고 싶어요. 교수님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저를 포함한 졸업영화 연출자들을 잘 돌봐주시고, 시간을 내어 주시고, 애정을 쏟아주신 것에 감사함을 표합니다. 다음 영화를 할 때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저의 진심이 담긴 이야기, 동시에 제 자의식에 매몰된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 삶의 진실을 담은 이야기를 쓰는 과정을 함께 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저는 졸업 이후에도 영화를 좇고 있겠지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영화뿐이라 어쩔 수 없이 영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온전히 내린 선택으로 인한 영화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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