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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Apr 03. 2022

이 주의 시들-자책

내 탓이긴 한데, 이 정도로 우울해할 일은 아냐.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이번 주는 자책을 주제로 한 베스트 시간이네요.

자책, 자기 자신을 책망한다는 뜻입니다. 안좋게 끝난 일이나 실패의 책임을 스스로에게 묻고, 다시 그러지 않도록 곱씹어보는 행위죠.


그러나 모든 일들이 다 그렇듯 자책 역시도 언제나 능사는 아닙니다. 재기하지 못할 정도로 깊게 자기혐오의 늪에 빠지는 경우나 아예 일을 손에서 놔버리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자책은 꼭 필요한 행동이지만, 결국 부정적인 감정을 충동질하기 때문에 과하게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형태로 자책의 늪에 빠집니다. 이유가 뭘까요. 책임감이 강해서?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성향이라서? 아뇨.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빨리 딛고 일어납니다.


그들은 실패한 일에 책임을 느끼고 자책하는 편이 재기하는 것보다 더 편하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우울해해도 괜찮은 이유가 있으니까. 그리고 스스로를 먼저 탓하면 주변 사람들도 나서서 미운 소릴 못하니까.


편한 선택은 늘 어두운 이면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사람의 감정을 손쉽게 쉽게 갉아먹죠.


이번 주에 뽑힌 자책들은 얼마만큼의 깊이와 시간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같이 보러가시죠. 베스트에 오른 작품들을 소개하겠습니다.




1. 범과야차님의 '늪의 순환'


https://m.fmkorea.com/4471320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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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나를 죄여온다.


뱀의 비늘가죽이 피부를 덮어오며


폐 속의 공기가 모두 빠져나가


숨이 쉬어지지 않는 무중력에서



스스로 채찍질하며 나를 깎아가며


흘린 눈물과 피로 늪을 희석해가는 나날들


나의 자책은 슬픔에서 분노 절망 다시 슬픔으로 돌아오는 순환.


이 고리는 언제쯤 끊어지어 나를 변화 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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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자책의 전형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글입니다. 자책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고 했을 때 늪만큼 잘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요. 무턱대고 저항하면 상태가 한층 더 나빠진다는 점까지 빼닮았습니다.


그럼에도 화자는 자책의 늪이 사라지는 것을 기대하고 있군요. 변화를 바라는 마음은 아직 늪 속의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았네요.


잘 읽었습니다.




2. 색채님의 '자책'


https://m.fmkorea.com/4455999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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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은 일


보다 값싼 자책


듣지 않은 충고


보다 쉬운 합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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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하기 싫은 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자책을 이용하는 사람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네요. 내용이 짧은 이유는 필자가 함축적으로 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화자의 태도가 치졸하고 저열해서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기가 싫어서. 충고대로 움직이는 게 귀찮아서. 다 끝난 다음에 대충 자기 탓을 하는 건 쉬워서. 그래서 화자는 자책을 택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3. 끝없는갈증님의 '경험담'


https://m.fmkorea.com/4465510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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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미워해야할 사내가 있습니다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굳이 그 낡은 오토바이를 훔친

이름 모를 사내였을까요


새 차와 새 오토바이 중에

오토바이를 말한 아들이었을까요


아들 말을 곧대로 듣고서

오토바이를 산 아비였을까요


신호를 잘못 보았던 트럭의

남대문 가는 과일장수였을까요


헬멧은 본분을 다 했지만

목은 어쩔 수 없었더라죠


애처로운 헬멧은 그렇게

아들의 학교 앞을 뒹굴었습니다


미워해야할 이 , 정할 새도 없이

한 목숨 부질없이 졌습니다


새벽 엔진소리에 놀랄때면

고개를 돌려 거울을 봅니다


평생 미워할 사내가 있습니다

눈물은 마르지도 않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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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자신을 포함해서 어느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일이 인생에선 가끔씩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런 때에 사람은 어딘가로 화살을 돌려야지만 숨이 쉬어지는 삶을 살게 되죠. 돌릴 방향을 도무지 모르겠으면 정답을 찾을 때까지 방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의 화자 또한 여태껏 화살을 한쪽으로 쏘지 못했습니다. 그 화살의 이름은 책임입니다. 차라리 화살을 쪼개서 버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기엔 학교 앞을 나뒹굴었던 헬멧이 눈에 밟힙니다.


그래서 화자는 붕 뜬 정신으로 화살을 빙글빙글 돌립니다. 괜찮습니다. 죽을 만큼 아픈 건 아니니까. 아픈 건, 죽은 건 오토바이를 사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은 어느 사나이였으니까.


잘 읽었습니다.


/////////////


이번 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시어의 무거운 분위기가 다른 때보다 훨씬 짙었던 한 주였습니다. 모쪼록 '자책'의 깊이가 글에서 잘 드러났기를 바라요.


저는 다음 주에도 좋은 작품들과 함께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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