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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hmitz cabrel Sep 22. 2020

09   그리고 나

<공중을 선회하는 여행>,  제주/경주/호주



제주 광치기 해변




혼자 하는 여행은 외롭다. 그래도 필요한 일이라 사람들은 홀로 떠난다.


떠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나다. 도시와 나. 바다와 나. 산, 나무, 흙 그리고 나.






혼자 떠나는 마음은 축축하다. 들뜬 마음 나눌 이 없고 긴장을 풀어줄 이도 없다. 마음은 반쯤은 기대, 반쯤은 염려로 젖은 채 차편에 발을 디딘다. 


성인이 되어 일어난 굉장한 일 중 하나는 혼자서 멋대로 걸어도 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혼자서 여행을 갈 수도 있었다. 당시 생활의 8할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거나, 아니면 이전의 나를 댕강 잘라내 버리겠다는 시도로 가득 차 있었다. 길 따라 걷다 길 없는 후미진 곳으로 가서 헤매는 짓도 그래서 했다. 나를 부정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다. 반쯤은 그랬을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단지 현실이 숨기고 있는 것에 홀려 있었을 뿐이다. 






내 나이가 한 자리수였을 때 방문한 이모할머니 댁은 커다란 이층집이었다. 집을 둘러싼 넓은 잔디 뒤에는 (내 기억이 맞다면) 소택지가 있었다. 늪과 못이 섞인 땅을 보고 나는 그것이 땅의 입인가 눈인가 코인가 했다. 그 아래에 무언가 굉장하고도 무서운 것이 있을 것만 같았다. 어른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일어나 달려 집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계단이 내는 삐걱대는 소리가 즐거워 뛰다 혼이 났다. 내가 누군지 헷갈리는 흰 한복을 입은 증조할머니를 보고 울어버리는 실례도 범했다. 새하얗게 센 머리를 쪽 진 그녀는 나의 어머니를 이름으로 불렀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나보다 큰 아이였다. 


집 밖의 잔디는 교회의 것이었다. 나는 언니를 따라 십자가 박힌 건물 주위를 둥글게 돌았다. 어지럽고 미식거릴 때까지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쓰러져 저 아래 늪을 떠올렸다. 


아름답고 으스스한 땅을 상상하는 일은 너무나도 쉽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 나는 어릴 적의 그 늪에 빠져들곤 한다. 세상사의 고민 대신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분위기에 빠져드는 것이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다른 사람의 걱정을 살 때가 있다. 사람이 혼자 남으면 자신의 얼굴의 근육을 풀 수 있고, 그런 얼굴은 대부분은 시무룩한 인상이기 때문이다. 어쩔 때는 화가 나 보이기도 하고, 울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 제주의 민박집 주인인 해녀는 내가 불쌍하다며 매일 고봉밥을 퍼주었고, 또 언젠가는 일기예보에 무지하여 뺨을 후려치는 바닷바람을 뚫고 다니는 내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던 슈퍼 주인도 있었다. 나는 그런 일이 싫지는 않다.


혼자 남은 얼굴처럼 혼자 만나는 자연은 평온과 별 관계가 없다. 발치에 걸린 나무들의 그림자는 가지를 뻗어 발목을 붙잡는다. 이파리를 흔드는 바람은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등을 떠민다. 바다는 물거품을 뱉으며 모래를 기어오른다. 물에 반사된 햇빛에 눈앞이 아프게 아른거린다. 나무들은 빛에 타오르며 자신의 색을 뿜는다. 파도에 젖은 신발로 아스팔트의 도로를 걸으면 새들이 하늘을 조각낸 전선으로 날아든다. 도로의 정원에 널린 수풀에는 굴이 많다. 굴을 마주 보면서 나는 세상에 없는 다른 것들을 생각한다. 으슴푸레한 빛이 등에 내린다. 나는 그때 뒤에 달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도시로 돌아간다.



호주 브리즈번




나는 가끔 이렇게 혼자 여행을 한다. 그때마다 세상은 잠시 정지한다. 그리고 나는 감각한다. 블랙홀과 같은 나의 뒤를 느낀다. 정말 희한하게도 그게 필요할 때가 있다. 아마 말 그대로 자연에 떨어진다면 운이 좋아야 굶어 죽을 것이다. 그래서 안전한 자연의 테두리 안을 배회하면서 나의 반을 되찾는다. 아니면 그런 척만 한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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