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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hmitz cabrel Sep 10. 2020

06   고양이들의 정원

<공중을 선회하는 여행> , 이탈리아 피렌체 보볼리 정원




너무 큰 정원에 들어가면, 나라인가 싶다.

거기에 더하여 이탈리아의 보볼리 정원은 신비로운 미로와도 같았다.

그런 곳에 가면 바보같이 그곳에 사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기를 기대하게 된다.







입구에 들어서자 넵튠이 분수 가운데서 물을 뿌렸다. 저 이에게는 약소한 일이겠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쉬울까는 알 수 없다.



나는 나무와 동상들 사이를 지나 정원 속으로 들어갔다. 지도를 보면서 걸으려고 했는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도에서 길을 잃었다. 길 찾는데에는 도무지 재능이라고는 없기 때문이다. 길은 나를 높은 곳으로 데려갔다. 언덕에 서자 멀리 넓게 펼쳐진 건너편 세상이 보였다. 





마음을 굳게 먹은 신이 정성을 다해 꾸민 풍경이다. 단층 건물들 주변에 난 젓가락처럼 길거나 아기처럼 작은 나무들, 하늘로 뻗은 풍성한 머리를 인 나무 기둥, 거대한 수풀들, 그들을 이고 있는 경사가 낮은동산. 모두에게 요정 같은 것이 사나 싶을 정도로 다른 세계 같았다. 아기같은 나무들 사이를 뛰어다니면 꽤나 재미있겠다 싶었다. 자연신들이 땅과 공기를 휘감고 주변을 날아다니겠지. 이세계에 온 듯한 몽롱함에 빠져 있는데 저 멀리 타워크레인이 고개를 들었다. 건물을 위로 쌓아가는 그것에 나는 몽롱세계에서 깼다. 



내려가는 길에 보볼리 정원의 또 다른 정원을 지나갔다. 그 정원에는 고양이가 있었다. 달의 눈을 가진 새카만 고양이가 네 개의 사자 얼굴 옆에 앉아 어딘가를 응시했다. 사자 얼굴은 날아드는 비둘기를 성가셔했고 고양이는 파닥거리는 날개들에도 꼼짝을 안 했다. 


그런데 고양이가 갑자기 가볍게 뛰어 땅으로 내려왔다. 뭔가 아는 눈치였다. 머리도 까딱까딱했다. 그래서 나도 기다렸다. 금방 어떤 사람이 나타났다. 모자를 쓰고 스카프를 단단히 맨, 머리가 센 할머니가 고양이를 부르며 먹이를 들고 온 것이다. 주변의 수풀이 흔들렸고, 고요했던 정원에서 고양이들이 튀어나왔다. 이 정원은 고양이들의 정원이었구나. 고양이들은 열심히 먹이를 먹었고, 그 모양을 물끄러미 서서 응시하던 할머니는 빈 접시를 들고 일어섰다. 다른 고양이들을 찾으러 가는 것 같았다. 고양이들이 그녀 뒤를 쫓았다. 새카만 고양이도 어느샌가 사라졌다.






이탈리아의 도시에서는 개가 많았다. 어엿한 폼으로 주인과 함께 걷는 그들에게는 근사한 이름이 있을 것 같았다. 반면 고양이를 본 것은 이 정원이 처음이었다. 인간이 살지 않는 이곳에서 고양이들끼리는 서로를 어떻게 부를지 궁금했다. 아니면 부르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방법으로 서로를 어루만지면 되니까. 나는 고양이들이 모두 자리를 뜰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얼룩 고양이 하나가 무리를 따라가지 않고 풀숲에 남아있었다.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과 반대로, 나가는 입구 쪽으로 걸었다. 고양이들의 정원에서 나가는 길은 하나였기 때문에 나는 어쩐지 그 고양이를 멀찍이서 따라가게 되었다.


얼룩 고양이는 잠시 앉기도 했다. 그리고 또 일어나 걸었다.


나는 어느새 들어왔던 입구에 가까워졌다. 

얼룩 고양이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다시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예전에 제주도 숲에서 나비들이 한꺼번에 날아드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날 밤 나는 나비들이 하늘에서 보볼리 정원의 고양이들이 땅에서 튀어나오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고양이들의 정원이란 어떤 것일까 생각했다.


그리고는 깨어나서 곧바로 오늘 보았던 그런 곳이겠거니, 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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