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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따로 없다

나는 타인을 관찰한다

by 잇슈


심리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상담을 받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있다.


"뭐가 좋아졌는지 모르겠어요."


특히, 약물치료를 하며 알약을 7알 혹은 그 이상 먹다가 알의 개수를 눈에 띄게 줄이거나, 아예 약을 안 먹게 되는 변화를 경험한 상태에서도. 그런 말을 하는 내담자들도 있었다.

과거에는 그럴 때마다 허탈감이 밀려왔다. 마치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최근 사정이 딱하다고 느껴 무료 상담을 진행했던 내담자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는 몇 년 전, 복지 비용으로 상담을 받았던 내담자이다. 하지만 지원금이 끝난 후 돈 때문에 더 이상 상담을 못 받겠다며 상담을 종결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당시 단기간에 알약을 눈에 띄게 줄일 수 있었던 내담자였기 때문에 상담 중단 후 반동의 위험성이 크다고 안내했음에도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내가 거의 봉사 비용에 가까운 비용만 받겠다고, 두 차례 정도 설득을 시도했지만 끝내 떠났던 이이다.


그런 그가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고 말했고, 나는 그에게 다른 무료 상담이나 복지 상담을 안내해 줬다. 하지만 그는 다른 상담사도 만나봤지만 효과를 못 봤다며, 다른 상담사를 찾아가는 게 두렵다는 감정도 내게 호소했다. 그래서 결국 고민을 하다가, 추후 그의 상담 기록을 사례연구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건부 무료 상담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진행한 상담은 이미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무료 서비스가 되었다. 사실 우리 분야에서 그렇게까지 무료상담을 받아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나는 지금까지 내담자들과 그렇게 조건부 무료로 진행한 사례를 어딘가에서 활용한 적도 없었다. 그저 내담자들의 부채감을 덜어주기 위해 그나마 고안해 낸 궁여지책이었다.


물론 그의 상태는 본인도 느낄 정도로 상당히 호전됐다. 알약을 복용하지 않은 날에도 정신장애와 관련된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정도라며. 스스로 체감한 변화를 직접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게 위와 같은 말을 하며, 다음의 말도 덧붙였다.


"저도 알아요. 제가 전보다 좋아진 거. 근데 여전히 저를 힘들게 하는 상황들이 있고, 저는 돈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상담을 받았다고 해서 내가 좋아진 게 뭔지 모르겠어요."


그의 어려운 환경과 금전, 즉 경제적인 문제.

사실 그가 과거에 상담을 중단하고 떠났을 때. 그의 정신적 상황은 온전치 않았고, 그로 인해 그는 계속 잘못된 투자를 하면서 경제적 곤란을 겪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그의 투자의 방향이 잘못됐다며, 상담 중에도 여러 차례 그를 제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마도 그래서 그는 더 나를 떠났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이 내게 저 말을 하는 이유에 대하여 심리적으로 바라보자면 간단했다.

내담자들은 종종 자신이 분노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 분노를 받아줄 사람으로 상담사를 지목한다. 그리고 화풀이하듯이 여러 부정적 생각이나 비판, 때로는 비난과 모욕도 서슴지 않는 말을 상담사에게 하고는 한다.

그 모든 것들이 상담사에게서 비롯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걸 알면서도, 그래도 누군가 탓하고 싶으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의지할 대상을 찾아야 하니까. 그때 상담사를 찾는 것이다.


이때 상담사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안아주기(holding)'이다.

도날드 위니컷(D. W. Winnicott)이 대상관계이론에서 설명한 보호환경 만들어주기.

그가 표현하는 분노가 스스로에게 수치심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도록. 그로 인해 그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부정적 생각이나 감정을 더 많이 표출해서. 그의 내면에 온전한 평화가 찾아올 수 있도록. 그렇게 그의 안에 있는 모든 부정적 정서가 정화돼야 그의 내면에도 온기가 자리할 수 있을 테니까.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 뿐이다.


이런 내담자들이 어느새 10명을 훌쩍 넘었고, 언젠가부터는 그 숫자를 세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렇다 보니 주변 지인들과 친구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네가 복권에 당첨되거나 갑자기 돈벼락 맞았으면 좋겠어."


자신의 복권 당첨보다 내 복권 당첨을 더욱 기원해 주다니. 감동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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