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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라 Dec 29. 2021

마지막으로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본게 언제에요?

왜 아름다운 재회는 영화속에서만 존재할까

마지막으로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본 게 언제예요?

기억이 나지 않죠. 저도 그래요. 기억이 나는 건 학교 앞에 공중전화가 하나 있었어요. 어딜 갈 때마다 그 공중전화가 눈에 밟혔어요. 사랑하는 남자랑 헤어지면 그걸로 전화를 걸었어요. 그리고 그 남자가 전화를 받으면 아 아직 안자는 구나 이러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전화를 끊어요. 아무 말도 못 해요 병신같이. 가끔은 그냥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갈 때도 있어요. 전화를 받을 수 없어...라는 그 안내멘트가 너무 싫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죠.  그리고 두 번째로는 나를 사랑하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요. 그 남자는 전화를 걸자마자 나라는 걸 알아요. 그러면 그 남자랑 술을 마시러 가요.



나를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그 남자는 내 얘기를 잘 들어주죠. 그런데 내 머릿속에는 온통 다른 남자에 대한 생각밖에 없어요. 세 명이 같이 술을 마시는 것 같죠. 그 남자가 나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전혀 들리지가 않아요.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서 잘 웃어요. 많이 웃어요. 술을 마시면 마실 수록 전화를 걸 수 없는 사람에 대한 마음이 커지죠. 그 사람과 한 번만 더 술을 마셔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면 괴롭고 죄책감이 들고 엉망진창이 되죠.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들여다보며  한참 동안 내가 사랑했던 남자에게 전화를 걸까 고민을 하죠.



그리고 술이 금방 또 깨요. 그래서 이제 집에 가야겠다고 해요. 그러면 그 남자는 나를 또 집에 잘 데려다줍니다. 집 앞에서 헤어질 때 차를 한잔 하고 싶다던가 같이 있고 싶다던가 수작을 부리는 경우도 있긴 한데 주로 얌전히 집에 데려다주고 가요. 될 대로 라 싶어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집에 데려간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내 생각에도 그게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새벽이 오면 생각하죠. 술을 마시면 더 보고 싶으니까 술을 마시지 말아야겠다. 내가 술을 마신 다는 건 이미 슬프다는 뜻이니까 술에 취한 나는 항상 더 슬픈 사람이 됩니다. 언젠가부터 술을 마시면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술을 한잔도 마시지 못한다고 말하게 됐어요.



이따금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와요. 당신일까? 받기 전까지는 분명 당신이었는데 받고 나면 그건 당신이 아닌 이 세상 모든 사람이에요. 분명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연애가 끝나고 나면 못다 한 말들만 남아요. 사랑해.라고 말하면 내가 더 사랑해요.라는 말을 듣던 시절이 있었는데 너무 먼 옛날이라 전생인가 싶을 정도예요.



그리고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요. 벚꽃이 피었다가 지고 낙엽도 지고 첫눈도 오고 새해도 오고 합니다.



이제 세상에는 공중전화가 사라지고 있어요. 받지 않을 전화를 걸 용기도 사라진 지 오래예요. 미안해.라는 말을 남기고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어요. 영화에서는 이별한 주인공들이 공항에서 이름을 한번 크게 부르는 것만으로도 재회를 하고, 심지어 결혼식장에서 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손을 잡아채 도망가는 것도 가능하죠. 마지막 순간에 용기만 내면 언제든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용기 내서 전화를 걸어봤자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라는 안내멘트를 듣는 게 전부예요.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있겠죠.



묻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잡아본 적이 언제에요?

받지 않을 전화를 걸 용기가 있었던 적이 언제에요?



기억이 나지 않죠. 공중전화처럼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남은 열정도 용기도 없고

우리는 쿨하고 비겁한 어른으로 시시하게 살아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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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도에 쓴 글을 수정함.

재밌게 읽으셨다면 구독과 댓글 공유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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