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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자신의 등껍질에 그려진 그림을 보지 못한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2006)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2006)


 어릴 적 나는 스스로를 정말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도 중간이었고 취미도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남들처럼 태권도를 배웠고, 피아노를 배웠다. 하지만 그 수준도 정말 애매해서 지금은 젓가락 행진곡을 제외한 곡은 다 잊어버렸다. 남들처럼 노래를 정말 잘하거나 피아노를 정말 잘 연주했다면 하나의 길로 갔을 텐데, 신은 나에게 재능을 선물한 것 같지는 않았다. 나에겐"이렇게 평범해서, 나중에 커서 뭐가 될까" 같은 막연한 걱정을 하면서 살던 시간이 있었다. 근데 그 생각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친구들과 평소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내 말을 듣더니 크게 웃으며 말했다. "너 말 진짜 웃기게 한다."


 평범한 주부로 나날을 보내던 스즈메는 우연히 계단에서 떨어지는 사과들을 피해 엎드리다 바닥에 붙어 있던 아주 작은 스파이 모집 공고문을 본다. 스파이를 구인한다는 수상한 공고문이지만, 그녀는 일단 그 장소로 찾아간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누가 봐도 평범한 부부의 가정집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건 스파이에 어울려 보이지 않는 스파이 부부, 부부는 누가 봐도 스파이와 어울리지 않는 스즈메를 보고 바로 합격시킨다. 스즈메가 합격한 이유는 다름 아닌 그녀의 '평범함'때문이었다. 하지만 특별해지고 싶은 스즈메는 오히려 스파이가 되고 나서 스파이답게 행동하고 싶어 한다. 스즈메는 가게에 들어가 선글라스와 가죽 재킷을 산다. 그런 스즈메의 모습은 부부에게 발각된다. 부부는 스즈메에게 다시 '평범'하게 행동하라고 지시한다. 그러자 스즈메는 생각한다. "평범함이란 무엇일까?"


 스즈메가 사는 마을에는 라면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마을에서 애매한 맛의 라면을 판다. 그는 맛있는 라면을 팔 줄 알면서도 팔지 않고 , 맛있는 커피를 만들 줄 알면서도 팔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역시 스파이라서 맛집으로 주목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어느 날 바다에서 시체가 발견되고 공안부에서 스파이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된다. 그렇게 스파이들에게는 공원에서 9시까지 집합하라는 최후통첩이 전해진다. 라면사장은 집합시간을 앞두고 마지막이자 처음으로 맛있는 라면을 만든다. 그리고 그 라면을 같은 스파이 동료와 함께 먹는다. 동료는 이렇게 맛있는 라면은 처음이라며 감탄하며 눈물을 흘린다. 라면사장에게는 이런 재능이 있었음에도 스파이이기 때문에 그동안 평범한 라면만을 만들었다. 라면사장에게 평범함은 자신다움을 버리고 남들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타인의 특별함은 쉽게 찾지만, 스스로는 평범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도 타인의 눈에는 각자 특별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이 영화 속 캐릭터들도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만, 각자 남들과 다른 특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화장실에서 나온 오징어순대를 보관하거나, 큰 일을 남들보다 크게 보거나, 성소수자이거나 철봉을 정말 잘 돌린다. 그들은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도 모르고 살다가 남들이 특이하다고 말해준 순간에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가장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스즈메도 아이가 강물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고 아이를 위해 과감히 강물로 뛰어내린다.


 우리가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직 자신만의 특별함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외로 빨리 헤엄치는 거북이처럼 등껍질에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게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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