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모습에서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며칠 전 퇴근을 하고 집에 가니 다들 집에 있을 시간인데 거실에 불도 꺼있고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소파에 앉아 쉬고 있으니 잠시 후 현관문을 열고 아내와 딸이 웃으면서 들어온다.
아내는 집에서 좀 먼 학원을 다니는 딸아이를 픽업해주고 있는데 그날 학원 수업이 예정보다 20분 정도
일찍 끝났단다.
딸아이는 그냥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 올 요령으로 버스 정류장을 찾아가서는 마침 도착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당연히 집으로 갈 거라고 생각했던 버스는 처음 보는 동네를 지나고 있었지만
돌고 돌아서 집으로 가겠지 하고는 앉아서 요즘 애들 답게 핸드폰만 만지작 거린 모양이다.
어느 한적한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버스에 있던 사람들이 한 명도 남지 않고 모두 내리더란다.
얼떨결에 따라 내려보니 시골 마을 풍경에 처음 보는 낯선 동네여서 부랴 부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단다
'엄마, 여기 어딘지 모르겠어요~ 데리러 와주시면 안 돼요?'
아이 엄마는 놀란 가슴에 근처에 가장 큰 건물이 뭐냐고 묻고는 부랴부랴 차를 몰고 어렵게 찾아가서
극적인 상봉을 하고는 집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우스웠는지 웃으면서 들어오는 것이라고 했다.
'아니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좀 물어보지 않고?'라고 내가 말하니 딸아이가 답한다
'뭐 돌고 돌아 집으로 올 줄 알았는데, 거기서 다들 내리니 얼떨결에 내렸다고...'
그 소심함이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게 했다.
나는 가끔 머리가 복잡하고 고민이 생겼을 때 시내버스여행을 하곤 했다.
종점에서 종점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서울 시내를 한 바퀴 돌면서 창밖에 풍경도 보고 워크맨으로 음악도 듣고 버스 안의 사람들도 구경하면서 몇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서울의 외곽이 종점인 버스를 타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낯선 풍경이 주는 두려움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때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버스에서 모두 내리는 낯선 사람들에게 '여기가 어디예요?' '시내로 나가려면 어느 버스를 타야 해요?'라고 한마디 묻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던 것 같다.
그리고 만원버스에서 내리는문으로 승객들을 밀치고 ‘여기 내려요!’라고 소리치며 내려야 하는데 그 한마디 하는게 챙피해 두세정거장을 더 가서 내려 터벅터벅 되돌아오기도 여러번이었다.
어린 시절 나의 소심함이 오늘 겪은 딸아이의 에피소드에서 새록새록 기억이 나면서 나의 소심함이 대물림되는 것은 아닌지 사뭇 염려가 되었다. 그리고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을 따라 버스에서 내려 낯선 동네를 두리번거리면서 조금은 긴장했을 딸아이의 모습이 떠오르니 피식 웃음이 난다. '딸아 오늘 좋은 경험 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