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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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아시아 청년평화외교 커머너 4강 후기
사실 몇 주 전 공감 사무실에 다녀왔었고, 공감의 다른 변호사님을 통해 대략의 공감의 활동에 대해서 듣기도 했어서 더 반가웠다. 그리고 평소에도 공감의 활동을 뉴스레터로 구독하며 보고 있었고, 인스타그램으로도 계속 팔로우하면서 지켜보고 있었기에 이번 강연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최근 나의 업무와 맞닿아 있는 부분들이 꽤 많고, 나의 관심사와 결이 비슷한 활동들이었어서 더 의미 있게 보내지 않았나 생각했다. 국제인권법이라고 하면 너무나 많은 내용들이 있고, 이슈들도 다양해서 모든 걸 2시간 내에 하는 것은 무리가 있기에 변호사님의 몇 가지 사례를 가지고 강의를 해주셨고, 조별로 토의할 사례도 두 가지로 좁혀주셔서 더 풍성하게 이야기를 듣고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건, 416 세월호 참사 사건, 1029 이태원 참사 사건 모두 인권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변호사님이 이야기하신 것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도 이 부분이었다. 과거에는 인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슈들이 지금은 인권이라는 틀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위의 재난 사건들도 그랬고, 우리가 생각하는 인권 이슈들이 과거에는 인권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시대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인권이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시대가 흐르면서 진보하는 것이 맞는 것이지만, 최근 전 세계적으로 후퇴하는 인권이 현황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재난 사건들의 경우 황필규 변호사님이 중요하게 여긴 부분은 진실 규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도, 416 세월호 참사에서도 진실 규명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최근 이태원 참사의 경우 진실 규명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27. 위원회는 당사국이 2022년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다중인파운집 참사를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였다는 점에 우려를 표명한다. 이 참사로 인하여 159명이 사망하였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위원회는 사건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전면적이고 독립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피해자에게 효과적인 구제가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에 유감을 표한다. 또한, 위원회는 정부 관계자들이 추모집회에서 과도한 공권력을 사용하고, 그와 같은 추모집회에 참여하는 인권활동가들을 조사하는 등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노력을 방해였다는 보고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제2조 및 제6조).
28. 당사국은 위원회의 일반논평 제36호(2018)를 염두에 두고 다음을 이행하여야 한다: 당사국은 진실을 규명할 독립적이고 공정한 기구를 설립하고; 고위직을 포함한 책임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보장하며, 유죄판결을 받으면 적절한 제재를 가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적절한 배상과 추모를 제공하고; 재발 방지를 보장해야 한다.”
(유엔자유권위원회 한국정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 2023)
또 다른 인상적이었던 점은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내용이었다.
북한이탈주민, 즉 탈북민의 인권에 대한 한국정부의 입장 그리고 한국이 탈북민을 대하는 과정에서 인권적인 측면으로 다시 바라보게 되면 이상한 점들이 보인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던 점들이지만, 돌이켜보면 이상한 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탈북민들은 한국에 오게 되면 국정원 조사를 받는다. 이 조사를 간첩인지 여부를 파악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하나원에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에서 한국에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지식들을 배우고 재사회화할 수 있는 교육을 한다. 하지만 하나원이라는 공간 자체는 구금시설이나 다름없다.
나는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 하나원을 방문했었는데, 아무나 들어갈 수 없으며, 정확한 위치도 공개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위치도 외진 곳이며, 주위에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탈북한 사람들이 하나원에서 3개월 정도의 시간을 보내는데, 이때 이들이 겪는 경험들을 인권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인권 착취적 또는 인권침해적인 요소들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합동신문 : 국가정보원에 의한 “북한이탈주민”의 구금
36. 위원회는 북한 이탈 주민이 남한에 도착한 즉시 “북한이탈주민센터”에 구금되며, 해당 센터에 6개월까지 수용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 우려를 표하는 것과 동시에 이 사실에 주목한다. 대한민국 정부 대표단이 제공한 정보 즉 피구금자들이 (기관 내) 인권보호관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도, 본 위원회는 피구금자들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 우려를 표명한다. 위원회는 북한이탈주민이 보호 대상자가 아니라고 판정된 경우, 독립적인 심의 없이 제3 국으로 추방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보고에 대하여 더욱 우려하는 바이다. (제9조, 10조, 13조)
(대한민국에 대한 유엔자유권위원회 최종견해 (2015))
내게 새로웠던 다른 지점은 한국 임시정부를 바라보는 변호사님의 시각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난민들이 만든 임시정부이다. 당시 한국은 일본에 의해 식민지를 점령당했기 때문에 임시정부를 수립한 사람들은 난민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이 이들을 난민로 '인정'해주었기에 임시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현재 한국의 헌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하고 있기에 우리는 난민들이 만든 선조들의 임시정부의 틀을 따르고 있으며, 현재에도 계속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난민을 바라볼 때 조금은 더 수용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과거의 한국 사람들도 다른 나라에서 난민으로 '인정' 받았기에 살아갈 수 있었고, 현재의 한국이 있기까지 기여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더불어, 한국에서 난민 이슈나 이주민 이슈를 바라볼 때 왜 우리는 한국인들이 이주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가?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에 한국인들이 이주를 했고, 지금도 이주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이주해서 한국사회가 이주민 및 난민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미국이나 유럽에서 한국인들은 미국인이나 유럽인의 권리들을 어느 정도는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이주민 및 난민들이 그런 권리를 향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역지사지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에 익숙해져서 이타적인 태도가 낯설어진 것일까?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는 한국을 보고 싶다.
photo by 피스모모
내가 가까스로 발견해 낸 건 만일 우리가 타인의 내부로 온전히 들어갈 수 없다면, 일단 그 바깥에 서보는 게 맞는 순서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 ‘바깥’에 서느라 때론 다리가 후들거리고 또 얼굴이 빨개져도 우선 서보기라도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러니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 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눈먼 자들의 국가」, 2014
위의 인용구는 황필규 변호사님이 공유해 주신 부분이다. 우리가 사회를 바라볼 때, 인권 이슈를 바라볼 때 이 문구를 다시 읽어본다면 조금이나마 그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공유해 주셨다.
종종 다시 이 문구를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