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떼기 21_ 늙음과 병듦, 담담히 그리고 기꺼이
01:50 호박죽, 팥죽, 생수, 작두콩차, 바나나, 한라봉을 담아 놓고 남편을 깨운다.
02:05 아이가 잘 자고 있나, 가스는 잘 잠겨 있나.. 확인하고 집을 나선다. 강풍을 뚫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04:30 친정 도착, 거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엄마는 벌써 식사를 하셨다고 한다. 우리를 위해 밥상을 차려 놓으셨다. 도루묵 조림이 있다. 이 아침에 먹힐까, 싶었는데 두 마리나 먹었다. (지난번에 내가 보내드렸던 도루묵, 오면 해주려고 일부러 남겨 놓으셨다고 한다. 두 분 드시라고 보내드린 건데. ㅠ) 옆에 앉아 우리가 밥 먹는 걸 지켜보시는 아빠.
05:05 출발(고속도로에 차가 거의 없다. 안 자려고 했는데 어느새 잠들었다.)
07:35 병원 도착
11:00 병원 출발 (**은행 **점에 들러 드!디!어! 통장을 해지했다. 계좌번호도 비밀번호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더니 이것 때문에 일부러 서울에 오신 거냐며 직원이 미안해한다. 다른 볼일이 있어서 왔다고 하니 다행이라며 웃는다. 웃음이 곱다. 잠들어 있던 돈이 내 통장으로 들어왔다. 이 돈으로 무얼 할까?)
휴게소에 들렀지만 엄마가 드실 만한 요깃거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 어묵과 호빵 정도만 사고 집에서 챙겨 온 것으로 허기를 달랜다.
14:55 친정 도착, 밥을 챙겨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
16:20 출발
18:45 도착
엄마가 서울 병원에 가실 일이 잦아지고 있다. 직업 특성상 학기 중에는 연가 내기가 어려워서 주로 동생들이 모시고 다녔다. 방학 때만이라도 우리가 모시고 다니려고 하는데 친정, 우리 집, 병원이 트라이앵글의 세 꼭짓점에 위치해 있으니 오늘 같은 동선이 나온다.
막상 엄마를 모시고 가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기력이 약해지셨다. 가능한 한 '느끼지 않으려고' 애쓰며 다닌 하루. 생각은 접고 몸을 움직이기로 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형제들 단톡방에 잘 도착했다고 안부를 전하니 동생들이랑 올케들의 다정한 문자가 올라온다. 각자 엄마와 통화한 내용을 내게 전해준다. (엄마와 나는 왜 서로 직접 이런 이야기를 못 나누는 거지? ㅎㅎ) 누구는 이번 주말에 장 봐서 갈 거라고 하고, 누구는 부모님 댁 근처 마트들에 전화해서 방역 패스 적용 유무를 직접 확인해 본 리스트를 올려준다(엄마는 백신 접종을 하지 않으셨다). 부모님 가까이에 살고 있는 자식은 없지만 저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기꺼이, 기쁘게 해 주니 감사하다. 훈훈한 단톡방을 보며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용기와 우리 마음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을 기쁘게 감당하는 지혜를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