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윤 Oct 24. 2020

저는 '조센징'이 아닌데요

내게는 아름답지 않았던 프라하

나는 어릴 때부터 인종 차별에 예민하다. 내가 어릴 때부터 살아온 동네는 외국인 근로자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특히 동남아인과 조선족의 비율이 높다.


학창 시절 같은 반 남자아이들은 특정 인종을 비하하는 단어를 종종 사용하며 평소에도 아무렇지 않게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욕을 해댔다. 그것은 나를 불편하고, 또 그들이 상처를 받진 않을까 불안하게 만들었다.

리고 성인이 되어버린 지금, 나는 길에서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똑같은 욕을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사회생활을 조금 일찍 시작한 나는 인종 차별이 우리의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걸 일찍부터 몸소 보고, 들어왔다.

하루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자리가 나는 일이 거의 없는데, 자리 하나가 비어있는 것이 보였다. ‘이게 웬 횡재?’하고 얼른 가보니 옆자리에는 피부가 검은 아저씨 한 분이 앉아계셨다. 빽빽하게 밀집된 지하철 안에 오롯이 그의 주변만 휑했다. 아저씨의 표정은 웃는 것도, 찡그린 것도, 그렇다고 무표정도 아닌 미묘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주변을 불안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그는 한눈에 보아도 어색하고 불편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순간 나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분노가 일어 얼른 그 옆자리에 앉았고, 맞은편에서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나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3년 전, 신혼여행으로 체코와 독일로 떠났다. 하지만 나 역시도 그곳에서 말로만 듣던 인종 차별의 피해자가 되었다.

여행 둘째 날, 프라하성의 웅장함에 취해있던 나는 신나서 남편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지나가던 일본인 남성이 우리를 향해 ‘조센징’이라며 시시덕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순간 너무 놀라 홱 돌아보았고, 그 무리는 저들끼리 웃고 떠들며 가고 있었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왜 그때 같이 욕해주지 못했나, 왜 그들을 멈춰 세우고 사과를 받지 못했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하지만 이미 지나버린 일이었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고, 속상해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왜 바로 자신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느냐며 같이 속상해했다.

그리고 여행의 거의 막바지에 경관이 너무 좋아 두 번이나 들른 프라하성의 스타벅스에서 인종 차별이라고까지 말하긴 어렵지만, 우리나라와는 다른 불친절함을 경험했다. 외국의 스타벅스는 주문 시 고객의 이름을 물어보고, 테이크아웃 컵에 이름을 적어준다. 남편과 나는 이름을 묻는 점원에게 각각 성(Last name)을 말했다. 그녀는 나의 성을 듣자마자 옆에 있던 다른 점원과 키득대며 컵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리고 음료를 받았을 때, 컵에는 알 수 없는 전혀 다른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건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는 은어였다.

남들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할 프라하가 그날 이후 내게는 다시는 가고싶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다.

미국으로 유학을 몇 년간 다녀온 친구 Y에게 말로만 들어, 인종 차별에 대해 지레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당하고 나니, 생각보다 더욱 기분이 나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놓고 욕을 하는 것도 기분이 나쁘지만, 심지어 낯선 곳에서의 은근한 조롱과 비웃음은 당사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특히 언어까지 통하지 않는 경우라면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하철 맨 끝자리에 앉아, 자신의 주변만이 휑한 그 상황에서 그 아저씨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겉으로 보이는 피부색과 생김새로 그들을 평가하고, 소위 ‘자신의 나라보다 못 사는 나라’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행위는 오히려 욕을 하는 그 사람의 격을 한없이 떨어뜨린다. 혹시라도 ‘못 알아듣겠지.’하는 생각으로 특정 인종을 비하하는 단어는 그 누구라도 절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사자는 절대 모를 수가 없고, 설령 눈치를 못 챘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가 아무렇지 않게 또 그러한 사상에 물들 수 있다.


피부색으로 우위를 나눌 수 있을까? 아니, 똑같은 인간에게 우선순위라는 것을 매길 수나 있을까?
이 세상에 우월한 인종은 없듯이 열등한 인종도 없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인종은 평등하기 때문이다.
인종 비하 발언뿐만 아니라, 얼굴을 찡그리며 쳐다보고 슬그머니 피하는 행동도 사실 모두 폭력이다.

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 더욱 아프게 꽂힐 때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습게 봤던 남편 육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