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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Dec 17. 2020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널 만나서 참 행복했고 감사했어

같은 반이 된 그 친구는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아니, 미안하지만 못생겼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미의 기준은 저마다 모두 다르니 먼저 이렇게 표현한 것을 사과하고 싶다.) 처음 그 친구를 보았을 때,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울퉁불퉁한 교정기와 두 눈이 작아 보일 정도로 두꺼운 안경이었다. 다소 어수룩해 보이긴 했지만, 어딘가 착해 보였고 친해지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친구는 쑥스러움이 많았지만, 예상외로 호탕한 웃음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교정기를 낀 치아가 콤플렉스인 양 항상 웃을 때 입을 가리며 웃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다른 한쪽 손으론 나의 어깨를 시원스럽게 툭 치며 큰 소리로 웃어주곤 했다. 보는 사람까지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웃음이었다.

 친구와 나누는 대화들은 모두 따뜻하고 정감이 있었다. 당시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던 다른 또래 아이들은 늘 세 보이기 위해 말 중간마다 욕을 섞어 쓰거나 누군가를 헐뜯는 대화를 주로 하였는데, (부끄럽지만 나도 잠깐 그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친구와 있으면 서로의 가족 이야기나 어릴 적 이야기, 혹은 최근의 고민 같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간혹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지?'하고 살짝 고민되는 상대가 있는데, 이 친구를 만나기 전에는 늘 기분이 좋았고 설렜다. (이성적인 설렘이 아니라 정말 사람 자체가 좋아서 느껴지는 설렘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수다를 떨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찌나 웃었는지 입꼬리가 아프고 진이 빠지곤 했다.

그 친구와 친해지고 나서 정말 그 친구가 예뻐진 건지, 내 눈에 그리 보였는지는 모르겠다. 나의 지인들은 그 친구를 우연히 보게 되면 '못생겼다.'하고 내 귀에 속삭인 적도 있지만, 그 친구와 친해지고 나면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다.

사람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 겉모습이 아닌 내면에서 우러나는 아우라가 있었다.

분명 예쁜 얼굴도, 날씬한 체형도 아닌 그 친구가 아름다워 보였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친구의 입에서는 늘 다른 사람을 향한 배려심과 선을 넘지 않는 적당한 위트가 섞인 말들이 흘러나왔고,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따뜻하고 잔잔한 호수와도 같았다. 감정에 크고 작은 기복이 없었고, 두꺼운 안경 너머 보이는 단추 구멍만큼 작은 두 눈에는 일반 사람들은 결코 담을 수 없는 깊은 혜안과 대상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서려 있었다.

선생님께서 발표를 시키시면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쑥스러움이 많던 친구였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다소 이중적(?)인 모습도 있었다. 당시 우리 반에 정신지체를 앓던 학우가 있었는데, 소위 학교에서 싸움으로 유명한 남자아이가 그 아이를 괴롭히자 그를 향해 어색한 욕을 섞어가며 소리친 일도 있었다. 한참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 친구에게는 장애가 있는 남동생이 있었다. 아무리 학교에서 난다 긴다 하는 아이들도 그 친구에게만큼은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특별히 빽이 있거나, 무언가 대단해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왠지 그래선 안 될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친구는 끈기와 인내심이 대단한 친구였다. 우리가 친해지고 몇 해가 지난 후,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방학 때 서로의 집 가운데서 만나 운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오래된 초등학교였는데, 우리는 만나서 함께 운동장 2바퀴를 돌고 줄넘기 천 번을 한 후 헤어졌다. 하지만 3일째부터 장마가 시작되었고, 나는 그 핑계로 계속해서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친구는 여름방학 내내 혼자 그곳에 나가 10 킬로그램 가까이 감량했다. 그때는 그 친구가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사실부럽고 크게 와 닿았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친구가 감량에 성공한 것보다 내가 나가지 않았음에도 계속해서 중간 거리의 약속 장소에 와서 운동을 했다는 것에 마음이 더 향한다. 그 당시에는 '왜 집 앞에서 줄넘기하지 않고?'하고 가볍게 묻고 말았는데 '네가 어떤 날은 운동하러 나오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라고 말하던 그 친구의 따뜻하고 깊은 마음을, 그 배려심을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과연 알아차릴 수 있으려나.

오늘따라 그 친구가 무척 그리워진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에 데이고, 상처 받고, 눈물 흘릴 날도 많아지다 보니 울타리 같고 엄마 같던 그가 보고 싶어 지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는 부디 건강하고, 타인을 향하던 배려심과 사랑 모두 고스란히 되돌려 받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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