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순수함을 이용하지 마세요.
이 세상의 착하고 순수한 모든 '그' 혹은 '그녀'들에게.
살면서 이유 없이 마음이 가고 챙겨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공통적으로 그들은 남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입이 무거운 편이다. 외모나 주변 환경 등과 상관없이 그들에게는 마치 자석처럼 상대방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런 힘은 억지로 꾸민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갖추기가 어렵다.
내 주변에도 물론 그런 사람이 있다. 그녀는 화려하게 예쁘진 않지만,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볼수록 호감이 가는 매력이 있다. 누군가에게 꺼내보이기 창피한 나의 치부까지 그녀에게는 속 시원하게 털어놓게 된다. 그만큼 그녀는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이다. 요즘 들어 내가 행복한 만큼 그녀도 행복했으면 좋겠고, 심지어 나의 행복을 나누어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고 내가 베풀기를 좋아하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냐. 딱히 그러지도 않다. 오히려 난 개인주의 성향이 다소 강하고 이기적인 사람에 속한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녀에게 주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고 하나를 주면 그 이상의 것들을 또 주고 싶어진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녀는 자그마한 선물도 대단히 기쁘게 받아들이는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몇 해 전 그녀에게 비싸지 않은 손수건을 선물한 적이 있는데, 마치 명품 손수건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다. 그 후에도 일본 여행에서 사 온 동전지갑을 선물하니 그녀는 마침 딱 필요했던 물건이라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녀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또 무언가를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했다. 그 말인즉슨, 물질적인 것보다 상대방의 진심을 더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언젠가 그녀와 내가 동시에 아는 지인과 약간의 트러블이 생긴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기보단 내가 잘못한 부분을 중립에 서서 솔직히 이야기해주었다. 물론 처음에는 무조건 내편이 아닌 그녀에게 조금 섭섭했다. '나라면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네 편을 들었을 텐데.'하고 서운함을 표하는 내게 그녀는 '네가 순간의 감정으로 소중한 누군가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그제야 그녀의 행동이 정말 나를 위하는 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을 살면서 나를 진심으로 위해주는 사람이 가족을 제외하고 몇이나 될까. 그런 의미에서 그녀와 알게 된 것은 내겐 엄청난 행운이다.
몇 해 전, 가족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할 힘든 일이 있었을 때도 유일하게 그녀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았는데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진작 알아차리지 못해 미안하다며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 그녀가 내 옆에 없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하루는 그녀가 죽는 꿈을 꾸었다. 온몸이 흠뻑 젖어 엉엉 울면서 잠에서 깨어난 나는 이게 꿈이 아닐까봐 순간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였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로 생생한 꿈을 꾼 나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그녀에게 뜬금없이 괜찮냐는 연락을 했고 꿈이라는 걸 안 순간, 얼마나 안도를 했는지 모른다.
작년까지 나는 개인적인 일들로 인해 꽤 힘든 시간을 보냈고, 그녀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는데 그만큼 나도 그녀에게 힘이 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마냥 착하고 순수한 그녀에게 모든 사람들이 잘해줄 거란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많았던 것 같다. 꾸밈없이 착한 그녀의 진심을 가식으로 오해하거나 시기하는 이들도 있었던 것 같고, 남에게 퍼주기만 하다 줄곧 상처 받는 그녀의 모습을 10년 넘게 봐온 나로선 그녀가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고 진정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요즘같이 상대의 속내를 알 수 없고, 마냥 착하면 이용당하고 바보가 되는 세상에서 그녀의 순수한 마음을 선입견이 아닌 진심으로 알아주고 감사해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의 곁에 그런 좋은 사람들만 남기를, 또 어딘가에서 이 글을 읽고 계실 수많은 '그' 혹은 '그녀'들도 꼭 그러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