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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긴스 Sep 12. 2020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이제는 시간이 꽤 흘렀는데 휴대용 유모차를 사러 베이비페어를 갔을 때의 일이다.

종류가 많으니 어떤 걸 살까 고민하는데 네가 유모차 들고 버스 탈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가벼운 게 제일 좋지 않겠느냐 고 남편이 한 마디 하는 순간 사실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었는데 그동안 육아하며 쌓인 모든 게 터져버렸다.
30도가 넘는 더위에 애 안고 다니는 것 하나만도 죽겠는데 얘를 안고 유모차까지 들고 버스를 타라고?
그 사람 많은 곳에서 결국 싸우고 말았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그래서 내가 못한 건 뭐가 있느냐 답도 없는 감정싸움으로 힘을 빼고 집에 돌아와서도
'넌 밥이라도 편하게 먹잖아! 샤워도 편하게 하잖아! 화장실이라도 편하게 가잖아! 애 앉고 똥 싸지 않잖아!'라고 소리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정도로 분노가 차올랐다.
사람은 똑같이 자신의 몸으로 겪어보지 않는 한 결코 남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말을 했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 당시엔 그랬다.


남편과 다툴 때마다 늘 반복되는 패턴이 있었다.
내가 참고 참다 누르고 있던 불만을 터트리면 남편은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내 얘기를 듣고 있다가 내가 한 말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자, 네가 A라고 말한 것은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된 것이고, 네가 B라고 말한 것은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일로 인해 네가 피해를 본 게 있냐? 없지 않냐? 그런데 뭐가 문제냐?
참고 있던 감정이 터져서 극도의 흥분 상태로 말하던 나는 너무나도 차분하고 냉정한 남편의 태도를 보며 더 이상 대화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 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감정이 폭발한 나와는 달리 침착하고 냉정한 남편을 보며 더 화가 났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같은 일이 일어났고 나는 말했다. 내가 당신과 대화하기 싫은 이유가 뭐냐 하면...
원인을 분석하고 결과를 도출해서 보고서 써낼 거야? 여긴 회사가 아니야. 나는 당신의 직장상사나 동료가 아니고. 그래 이것으로 인해 내가 피해를 본 것은 없어. 하지만 내 감정이 다쳤잖아.

책 좋아하고 음악 좋아하고 영화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남중 남고 기계과를 나와 도면 그리는 일을 하는 남편.

남편이 내 말을 알아듣기나 할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느끼는 바를 그냥 그대로 말했고 잠시 후 돌아온 남편의 대답은.


미안하다 너의 감정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였다. 의외였다.

감정적인 나와 이성적인 너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해'라는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한 집에서 같은 공간에서 이렇게나 가까이 살아도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다. 가족, 친구, 연인 모두의 관계가 그렇다. 너무나 다르지만 '이해'라는 공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어쩌면 모든 관계는 이것이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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