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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귄 Jun 30. 2021

자존감 갉아먹는 무례한 호감

평화로운 금요일 밤, 낯익은 이름의 누군가가 메시지를 보냈다. "실례가 안된다면 연락하고 지내고 싶어요." 내 인맥 리스트를 차르륵 펼쳐보니 낯익은 누군가는 전직장 후배였다. 굉장히 조용한 사람이었고 내가 퇴사하기 몇 달 전에 입사를 하신 분이라 말도 몇 번 나눠본 기억이 없었다. 조금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내성적인 사람이 이렇게 연락하는게 쉽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갑게 인사를 했고 근황을 서로 주고 받았다.


그러곤 한번 뵙고 싶다는 그 사람은 대뜸 어디 사냐고 했다. 그리고 물었다. "자취하세요?"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도 동네 얘기하면 자연스럽게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하니까 답했다. 그러자, "괜찮으면 지금 볼래요?" 


그때 이건 아니다 싶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라 10시 이후에는 카페도 식당도 다 문을 닫은 시점인데 지금? 심지어 옆동네도 아니고 경기도에서 굳이 서울로? 어렵다고 거절했고 남자친구가 있음을 밝혔다. 그 사람은 그제서야 연락의 목적을 여실히 드러냈다. 아쉽다, 연락이 늦었다, 망설이지 말걸 그랬다 등... 이미 불쾌함이 들었고 폰을 멀리 둔 채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서 더욱 기분이 상했다. 계속 오늘이라도 보자고 했고 심지어는 12시가 넘어서 전화를 건 기록이 남아있었다.


결국 난 그 사람을 차단했다.


무례한 호감은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 해충이다.


20대 초반의 나는 이런 호감 표시에 약간의 우쭐함이 있었던 것 같다. 나를 좋아하는 마음에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쌓이고 질적으로 더 좋은 연애를 하고 나이를 먹어보니 진짜 호감이 있으면 그럴 수 없고 그러면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우쭐함이 아니라 우울해졌다. 대부분의 20대 초중반 여성들에게 그러하듯 나 역시 길에서 번호를 물어보는 사람이나 호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걸 지켜보던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다. "정말 예쁜 여자한테는 그렇게 못해." 회사 선배에게 밤 늦게 연락한 그 사람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날 어떻게 본 걸까? 늦은 밤 불러내면 나올 것 같은 사람 or 조금만 얘기해보면 만나줄 것처럼 보이는 사람?


호감가는 이성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그 행동의 바탕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 사람의 행동 어디에서 나에 대한 존중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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