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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Sep 13. 2023

재난 판타지 소설 "달의 아이"를 읽고..


며칠 전, 치과에 다녀왔다. 조금 더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에 치아 교정을 시작한 지 어느덧 2년. 슬슬 마무리되어가나 싶던 찰나,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스크류(나사)를 잇몸에 박아야 한다는 것. 인간 프랑켄슈타인이야 뭐야, 참으로 난감했지만 거부할 권한이 없으니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차갑고 날카로운 나사가 무자비하게 잇몸을 뚫고 들어왔다. 신기한 건 마취약에 취해 통증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것. 입안에선 비릿한 피 맛이 났지만, 고통없이 말짱했다.


“대략 30분 뒤부터 마취가 슬슬 풀리실 거예요. 미리 진통제 준비하셨다가 꼭 드세요." 의사선생님의 말씀(나중에 보니 '경고')을 들었지만, 그땐 짐작하지 못했다. 잠시 뒤 쓰나미처럼 덮쳐올 역대급 통증을.


정아와 상혁 부부는 딸 수진을 데리고 여느 날처럼 밤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달의 크기. 역대급 슈퍼문이었다. 감탄하며 사진을 찍던 찰나, 부풀어 오른 커다란 달과 그 주위로 뿜어져 나온 신비로운 오로라가 몸무게 가벼운 아이들을 끌어올려 검은 하늘로 사라졌다. 해가지면 노을이 곱게 물들고 달이 뜬다는 불변의 진리. 달은 그저 빛을 낼뿐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법칙이 깨지고, 재앙의 근원이 된다?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만 같았던 평범한 일상과 소소한 행복이 하루아침에 공포와 비극으로 바뀔 줄이야!


소설을 읽는 내내, 마취에 취하고 무뎌져 곧 다가올 통증을 대비 못했던 무지한 나의 모습이 주인공들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어린 왕자 속 유명한 말과 "왜 우리는 잃고 난 후에서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지"라는 노래 가사가 가슴 절절하게 사무쳤다.


눈앞에서 딸을 놓쳐버린 뒤 점점 야위고 피폐해져가는 엄마 정아를 보면서 "모성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엄마가 아기를 뱃속에 품는 순간, 아이를 사랑으로 잘 돌보라며 신이 선물로 주는 것일까. 달로 사라진 아들 찾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아빠 해준을 보면서 "부성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빠가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는 순간,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라며 신이 선물로 주는 것일까. 아이를 향한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힘. 때론 초자연적인 위력을 갖기도 하는 “모성애와 부성애” 소설을 읽는 내내 토할 것처럼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단어였다.


아주 오래전, 여름 휴양지 바닷가에서 2살배기 막둥이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방금 전까지 모래놀이를 하던 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순간, 세상이 멈췄다. 소음이 사라진 컴컴한 공간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만 홀로 서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내 아이를 영영 잃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이 온몸을 휘감아오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미친 여자 되는 거 한순간이었다. 한 시간 정도 울며불며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저 멀리서 구조 대원의 품에 안겨 울고 있는 막둥이가 보였다. 그날, 최소 1년은 늙었으며, 평생 흘릴 눈물과 한숨의 절반을 소진했다. 다시 생각해도 눈물이 핑 돌만큼 아찔하고 감사한 기억이다.


나는 불과 한 시간의 짧은 이별에도 실성 직전이었는데, 소설 속 부모들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자연의 재앙 앞에서 아이를, 소중한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전 세계 부모들의 인간 군상과 이기적인 민낯을 보면서 어느 한사람 욕하거나 손가락질할 수 없었다. 그들의 모습 속에 내가 있고, 나도 그들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알기에.


주인공들이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너라면, 세아가 달에 있다면, 너는 어떻게 할래?”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잖아. 그런 끔찍한 상상은 하고 싶지 않아.” 만약에.. 만약에.. 당신이라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기다려, 반드시 구하러 갈게."

"기다려, 반드시 구하러 갈게."

"기다려, 반드시 구하러 갈게."


책을 덮은 뒤에도 수진 엄마 정아의 애끓는 절규가 귓가에 맴돈다.




<작가님에 대한 아주아주 사적인 이야기>


이 소설의 저자인 최윤석 작가님은 "김 과장" "추리의 여왕" "정도전"등등 유명 드라마를 연출하신 PD입니다. 이 책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만든다면 어느 배우가 좋을지 캐스팅을 하면서 글을 쓰셨다고 하는데, 그래서였을까요? 책을 읽다 보면 활자가 살아나 생생한 장면으로 펼쳐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몇 해 전 이곳 브런치에서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김 과장이라는 드라마를 사랑했던 애청자로서 브런치에 올라오는 작가님의 글을 구독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읽을 때마다 매번 놀라게 되는 뻔하지 않은 신박함과 재치만점 아이디어. 그리고 무엇보다 미친 필력. 돈을 주고 살수만 있다면 사고 싶은 능력이에요. 이 소설 또한 처음 브런치에 소개되었을 때는 A4 2장 분량의 짧은 단편이었는데, 그 짧은 글이 400페이지의 장편 소설로 탄생되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브런치가 인연이 되어 다른 작가님과 함께 여의도에서 두 번의 식사를 했습니다. 학창 시절 전교 1,2등만 했을 것 같은 작가님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수재이자, 천상 이야기꾼인데, 외모마저 훈훈하고, 성격은 또 얼마나 소탈하고 따스하신지. 왜죠? 그러고 보니 작가님은 다 가지셨네요. 첫 에세이도 멋졌지만 이번 소설은 진심으로 대박 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될 것 같은 재난 판타지 소설! "달의 아이” 자신 있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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