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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 Sep 09. 2021

팬데믹 직장인의 골방 속 영화 감상: 플로리다 프로젝트

플로리다만의 이야기가 아니겠지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포스터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봤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순수함을 잃어가는 것 같아 동심도 찾을 겸 포스터의 색감이 예쁜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골랐죠.


영화를 본 후 티끌만큼 남았던 동심마저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거대한 우울감이 짓누르기 시작하더군요. 분명 영화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와 앞서 언급한 밝은 색감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고 나면 한없이 생각이 깊어질까요.


*스포 주의 바랍니다.


에너자이저 무니


이 영화의 주인공은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입니다. 무니는 다른 친구들을 이끌며 그가 살고 있는 매직캐슬 모텔의 소위 골목대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차에 침을 뱉거나 거짓말을 하고 아이스크림 먹을 돈을 구걸하는 등 어른으로서 거북한 행동을 하지만 티 없는 웃음에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하지만 천진난만한 무니 때문에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 헬리(브리아 비나이트)의 처지가 더욱 비관적으로 다가옵니다. 분명 웃음소리 넘치는 영화지만 내용은 이처럼 잔인할 수 없습니다.     


핼리는 무니의 엄마로 미혼모입니다.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하는 일이라곤 모텔 방에 누워 무니와 함께 티비를 본다거나 싸구려 향수를 할인가로 산 후 고급 향수로 둔갑해 파는 것입니다.     


핼리는 철이 없어 보입니다. 음식을 살 돈이 없어 친구 애슐리(멜라 머더)에 벼룩처럼 빌붙어 살고 있는 주제에 자존심만 내세웁니다. 애슐리와 절교하게 된 계기인 빈 집 화재 현장 앞에선 안타까워하고 경계하기보다는 딸 무니와 함께 천진난만하게 기념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핼리는 방세를 제때 내지 못해 바비와 365일 내내 싸우고 있다


이러한 핼리조차 목을 옥죄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방세입니다. 나라님도 구제 못하는 가난에 매번 모텔 관리인 바비(윌렘 대포)와 설전을 벌입니다. 사실 이 영화 내내 바비와 방세를 두고 싸운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처음부터 핼리가 방세를 못 내는 처지였던 건 아닙니다. 댄서였던 핼리는 성매매를 요구하는 업주에 반발했고 결국 잘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30시간 일하는 직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보조금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핼리는 어디서도 자신을 채용하지 않는다고 항변하지만 공무원은 딱 잘라 거절합니다. 비극의 시작인 거죠.


결국 핼리는 방세를 내기 위해 성매매를 시작합니다. 성매매를 거절하면서 시작된 비극이 결국 성매매로 끝맺게 되는 영화의 서사에 압도당합니다. 그 피해는 무니에게까지 옵니다. 딱히 무니를 맡길 곳이 없었던 핼리는 성매매를 하는 동안 무니를 욕실에서 놀게 합니다. 허술한 방안이기 때문에 얼마 가지 않아 결국 무니에게 성매매 사실을 들키고 말죠. 아직 어린 나이라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평생을 안고 갈 트라우마라는 건 명백합니다.


바비는 좋은 사람이지만 결국 핼리와 무니를 지켜내지 못합니다


성매매를 하러 온 남성들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만들어냅니다. 당장 핼리의 처지와 비교되는 대상입니다. 이 남성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위해 디즈니랜드 입장권을 사고 쓸데없이 힘이 남아돌아 성매매까지 하고 있습니다. 영화 중, 핼리는 성매매를 하러 온 남성이 가진 디즈니랜드 입장권을 훔칩니다. 무니와 디즈니랜드를 가기 위해서? 핼리는 그런 것을 생각할 처지가 아닙니다. 훔친 입장권을 되팔고 방세를 내는데 바쁘죠.


성매매 남성들은 여성이 얼마나 위험한 처지에 놓여있는지도 보여줍니다. 성매매하던 핼리를 무단촬영 하고 인터넷 공간에 올린 것이죠.


이들은 왜 핼리를 촬영했을까요. 그저 물건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대해도 될 만큼 인격적 대우를 할 필요 없는 존재로 본 것이죠. 핼리가 어떻게 성매매까지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인지 알 리도 없고 관심도 없는 남성들은 그저 핼리는 음란하고 방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사실 핼리는 자신이 무단촬영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구토를 할 만큼 마음이 약한 사람입니다.


이 영화는 약자, 특히 여성과 아이들이 어떻게 사회의 구석으로까지 몰리는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자세한 탓에 불쾌하기까지 합니다. 제가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고 난 후 더욱 우울해졌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더욱 불쾌한 이유는 이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가 플로리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분명 미국 올랜도 디즈니랜드 앞에서 발생한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도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전자발찌 훼손 후 여성 2명을 살해한 강모씨가 화제입니다. 그의 범죄 타깃은 노래방 도우미들이었습니다. 영화 속 핼리와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사람들이죠. 그들이 피해 대상이 된 이유는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렸기 때문이라고 추정합니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여성가족부 폐지론과도 맞닿아 있군요


흉악범만의 문제일까요. 대형 포털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댓글들입니다. 한국 사회도 성매매 여성, 더 큰 차원으로 바라볼 때 여성들에 대한 존중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전체 여론을 반영했다고 볼 수 없지만 얼굴을 가린 공간에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회 구성원들의 속내를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고 나서도 성매매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나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과연 여성들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한국엔 많은 성매매 여성들이 있습니다. 2015년 기준 한국의 성매매 시장 규모는 37조원에 달한다고 하네요. 성매매 종사 여성들은 영화 속 핼리처럼 위태위태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대부분 방세를 못 내거나 최소한의 음식을 먹을 처지도 안 돼 구석으로 몰렸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자활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자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정부 부처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단언컨대 이들을 향한 지원은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 신장을 넘어 여성의 인권 신장, 아울러 한국 시민 전체의 인권 신장으로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바비가 색을 칠할수록 여성과 아이들의 비극은 더욱 숨겨지고 있습니다.


매직캐슬 모텔의 관리인 바비는 영화 내내 건물을 청소하고 밝은 핑크색으로 벽을 색칠하고 있습니다. 이 모텔 안에서는 마치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고 포장하듯 말이죠. 하지만 아이들이 불을 내도 사상자가 없을 만큼 빈집이 넘쳐나는데 모녀는 방세를 못 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불행하게도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플로리다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도 무작정 포장하고 숨기거나 이들을 무시하기보다는 약자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보호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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