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엄마 품이 그립고, 퇴근 후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에 미주알고주알 오늘 있었던 일을 일러바치는 아직 어린이 같은 어른 아이다.
이 어른 아이가 삼 년 전에 결혼을 했다. 18년간의 자취 생활이 나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면서 서럽기도 했다. 그 시간을 뚜벅뚜벅 견디는 동안 우연히 찾아온, 끊어질 듯 꾸역꾸역 연결된 인연으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연애 시절에는 그의 몸짓과 말투, 그의 위트 섞인 말솜씨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요즘 나는 남편이란 사람의 안 좋은 점을 먼저 생각하기에 바쁘다. 향간의 말을 생각해 보면 콩깍지가 써졌다가 벗겨져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남편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나의 안경을 쓰고 그를 바라보다가 이제야 그 안경을 벗고 그를 보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 맞을 거다.
남편은 나보다 다섯 살 위다. 내 나이 마흔이니 남편은 마흔다섯 인 셈이다. 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차이만큼 남편과 나는 생각하는 것도 지향하는 것도 무척 다르다. 나는 지극히 내향적이다. 내가 친하게 그리고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람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렇다고 친구가 결코 없는 것은 아니다. 시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마음이 따뜻한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과 가까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그런 모습을 닮아 버렸다.
남편은 나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낙천적이고 활동적이다. 자동차를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들과 밥 먹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애기처럼 선물 받는 것도 사랑받는 것도 무척 좋아한다. 얼마 전 남편의 생일날 점찍어둔 선물을 사러 서울에서 파주까지 가자고 주말 아침부터 나를 조르는 철부지 남편. 1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서 얻은 선물을 득템 하며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남편의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이다. 마치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받고 기뻐 날뛰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남편의 모습 속에서 어린이의 모습을 본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선물 타령을 한다느니... 꼭 우리 8살 조카도 안 하는 선물 타령을 마흔다섯 살 어른이 한다느니... 그런 말들이 나의 마음에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좋으면 좋다고 나를 꼬집고, 화가 났을 때는 화가 나는 티를 팍팍 내는 그 사람을 보면서 나는 오늘도 그 사람의 모습 속에서 어린아이를 보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모습이 나에게도 있다는 사실에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나도 똑같이 장난을 치고, 똑같이 화를 내고, 똑같이 선물 타령을 하고 있음에도 나는 어른스럽고 당신은 어린아이 같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결국은 똑같은 어른아이 이면서...
오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른 아이 같은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
상사가 칭찬을 하면 좋아서 헤벌쭉 그 웃음을 숨기지 못했던 6살 애기 아빠 직장인. 상사가 나를 신뢰하고 칭찬을 하는 것 같으면 그게 샘이 나서 자신이 잘한 거를 과장해서 늘어놓았던 또 다른 어른 아이의 모습들... 오늘도 나는 그런 어른 아이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웃으며, 때로는 멀어지기도 하며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퇴근 후 돌아가는 나의 스위트 홈에서도 그러한 어른 아이와 마주하며 오늘의 하루가 어땠노라고 오늘 내가 상대한 사람들은 어떠했다고 미주알고주알 입을 쫑알거린다.
어른 아이... 그 워드 안에는 참 많은 것이 담겨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관점을 다르게 생각해 보면 세상에 어른이들만 있으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어른이 속에 있는 어린이 같은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웃기도 하고 기쁨을 얻을 때도 많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오늘 나는 내 내면의 어린이, 그리고 내 주변의 어른 아이의 모습 속에서 기쁨도 얻고 공감도 얻고 그렇게 그렇게 오늘 하루를 견뎌내는 힘을 얻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