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MZ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직장인 절반 이상이 회사 생활을 하며 임원 승진할 생각이 없다는 여론조사를 본 적이 있다.
MZ세대인 나는 이 통계결과가 공감이 가서 MZ세대 직장인들이 왜 승진할 생각이 없을까 생각을 해봤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커지는 성과에 대한 압박감, 밤이든 주말이든 윗선의 지시가 있으면 야근, 특근까지도 해야 한다는 피곤함, 그냥 주어진 것만 해주고 그 이후의 시간을 나와 가족을 위해 쓰고 싶다는 워라밸 추구, 더 큰 이유로는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할 생각이기 때문에 임원이 될 생각이 없다고 했을 수도 있겠다.
MZ세대 직장인들은 요즈음 리멤버(명함 등록 앱)를 통해 이직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앱에 간단한 프로필과 근무 이력을 기입해 두는 것만으로도 헤드헌터의 연락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나도 이 앱에 내 명함을 등록해 두었는데, 1년 동안 기분 좋게도(?) 20건 정도는 이직 제안을 받았던 것 같다. 명함에 등록해 둔 내 프로필 사진이 특출 나서도, 내 경력이 화려해서도 아닐 거다. 그냥 이 업계에서 오래 일했다는 것, 오래 일했기 때문에 거쳐온 업무도 많고 한 곳에 우직하게 오래 일했다는 점을 높게 사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헤드헌터들은 리멤버 앱에서 대상자를 선택하고 알림톡을 보낸다. 이 포지션에 관심이 있으면 연락처를 오픈해 달라는 알림이다.
그렇게 알림톡이 와서 연락처를 오픈하면 헤드헌터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력서를 제출하는 식이다.
최근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유명한 패션 기업, 신생 IT기업의 홍보 팀장 포지션 제안을 받았다.
퇴근을 하고 난 이후에 모르는 번호로 여러 번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이기도 하고, 지하철로 이동 중이기도 해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전화가 계속 오더니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누구누구 헤드헌터인데 잠시 통화가 가능하냐는 문자였다. 좀 귀찮기는 했지만 또 어느 기업 포지션을 제안하려나 들어나 보자 하는 호기심에 콜백을 했다.
전화를 나에게 걸었던 분은 헤드헌팅 회사의 이사님이었다.
“(다짜고짜) 000님 맞으세요? 000 기업 임원분이 000님을 너무 보고 싶어 하셔서 연락드리게 됐습니다”
“네? 저를 왜요?”
헤드헌팅회사 이사님과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왜 사람을 오라 가라 하며 보고 싶다는 얘기인지 그 속내가 궁금했다. 이사님의 말로는,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가 소비재 쪽이고, 그쪽에서 오래 일했다는 점,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홍보를 잘하니까 그 회사 임원이 나를 꼭 보고 싶다고 했다는 거다.
헤드헌터 연락을 많이 받기는 했었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내가 다니는 회사가 홍보를 잘하고 있어서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들은 적은 없다.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자랑도 할 겸 전화를 바로 걸었다.
“여보, 어디야? 나 방금 헤드헌터한테 연락 왔는데... 000 거기 회사 알지? 그 회사 임원이 나를 꼭 보고 싶다고 했다네.... 여기 면접 한번 가볼까?”
남편의 대답은 간단했다.
“너 하고 싶은데로 해!. 헤드헌터한테 나도 좀 소개해달라고 해!”
그렇게 남편과 짧은 대화를 끝내고 다시 헤드헌터 이사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왜 나를 그쪽 회사 임원이 보고 싶어 하는지 한번 더 물어보고, 그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사님에게 이런저런 회사의 사업 방향과 최근의 투자 소식 등을 대략 들었다. 패션 대기업인데, 최근에 부동산 투자를 하면서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고 있고, 수익을 많이 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이 회사에 이력서 제출을 할 필요가 없다고 바로 판단했다. 그 짧은 통화 순간, 이 회사는 기업 정체성이 없어 홍보하기 굉장히 어렵겠다, 그리고 일이 굉장히 많겠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이후 내가 이사님께 한 질문은 연봉 같은 이직의 필수 조건이 아니었다.
“직장에 어린이집이 있나요? 기혼 여성을 위한 복지는 뭐가 있나요?”
“그건, 회사 인사 담당자에게 확인을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하고 난 뒤, 이사님은 나에게 그 회사에는 어린이집이 없고, 기혼 여성을 위한 복지에는 이러이러한 것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이력서를 빨리 보내달라는 재촉과 함께.
이사님과의 몇 번의 통화로 나는 그 회사가 내가 가야 할 회사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판단했다.
물론 현재 이직 생각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일이 많을 수밖에 없고, 기업의 정체성이 모호해 홍보하기가 굉장히 어렵겠다, 기혼 여성이 다니기에는 복지 혜택이 많지 않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30대까지만 해도 지금보다 더 높은 연봉을 주고, 복지 혜택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이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엄마가 되기로 결정한 이상, 연봉과 자아실현은 이직을 선택하는 필수 요소가 되지 못한다.
직장에 어린이집이 있어야 한다, 아기를 키우며 다니려면 일이 너무 많지 않고 워라밸이 보장되는 곳이어야 한다는 나름의 새로운 이직 기준이 생겼다. 물론 아기를 낳고 좀 키워둔 후에 이직을 한다 해도 이후 임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아직 없다.
MZ세대 직장인이라고 해도 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 기혼이냐 미혼이냐의 차이 등으로 이직을 선택하는 기준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 회사를 다닌 지 11년째다. 누군가는 고인 물이 되어간다고 하고, 이제 이직의 기회가 없을 거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패션기업 임원처럼, 어디선가는 나를 필요로 하는 나의 경험을 높게 사는 곳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잠시나마 안도하게 된다.
다음 직장은 어느 곳이 될까. 미리 머릿속으로 기대하고 그려봐야겠다. 생각은 현실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