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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Nov 14. 2024

맛있는 한 끼,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예전 어느 오락 프로그램에서 방송인 김성주 씨와 이제는 중견 방송인이 된 안정환 씨의 해외 현지 축구 중계를 위한 출장 기록 영상을 다루었다. 두 사람은 숙소를 함께 사용했다. 안 씨가 늦은 밤 잠들기 전, 오랜 시간 이동하느라 고단한 몸을 굳이 일으켜 김치찌개를 끓인다. 지금 끓여두어야 내일 아침 먹을 때 형(김성주)이 맛있게 먹지, 혼잣말에 그가 참 세심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실제로 그렇다. 하루 지나서 다시 데워 먹는 찌개가 더 맛있다.


  구글은 자사의 기업 윤리에 대해 어서 빨리 자각해야 한다. 장담컨대, 그들은 사용자의 말과 글을 몰래 엿듣고 엿본다. 내가 벗들과 전화 통화로 또 메신저로 ‘세상 살기 힘들다’ 엄살떤 것을 알아챈 것이 분명하다. 퇴근길 유튜브 알고리즘이 뜬금없이 내가 정말이지 좋아하는 배우 이병헌 씨의 영화 장면을 들이민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획책에 속수무책 노출된 나는 이윽고 스트리밍 서비스 앱을 가동한다. 그렇게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 대해 얘기하겠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나는 여러분께 이 영화를 강력하게 권한다. 온갖 평론적 수사를 다 떠나서 재미있다. 그러면 그 재미를 구성하는 요소에 대해 논거를 제시하겠다. 이 영화는 한 편의 ‘연기 차력쇼’다. 앞서 필자는 이병헌 배우를 흠모한다고 밝혔다. 그는 연기 스펙트럼이 어마 무시한 배우다. 직전작이었던 영화 <남한산성>에서의 인물과 본 영화의 동네 백수건달 같은 배역은 한 사람이 연기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발달 장애인 동생을 연기한 박정민 배우는 어떠한가. 그는 작중의 피아노 속주 장면을 대역 없이 소화했고 그 와중에 자폐 스펙트럼까지 함께 연기해야 했다. 아카데미 수상에 빛나는 윤여정 배우는 거론이 필요 없겠고, 한지민·문숙·김성령·조관우 배우 등 조연과 특별 출연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 하나 연기 구멍이 없다. 특히 주인공 조하(이병헌 扮)의 친구로 등장하는 백현진 배우는 존재 자체로 설득력을 가진다. 오토바이점 주인으로 나오는 그는 스냅백 모자를 쓴 모습만으로 손톱 밑에 까만 기름 떼를 짐작하게 만든다.


  다음, 군더더기 없는 시나리오다. 주요 인물의 등장, 사건의 태동과 전개, 무리 없는 결말까지 납득 가능한 개연성을 가진다. 누구 하나 역할 없이 배치된 인물이 있지 않고 상황과 다음 상황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무엇보다, 초반 몇 분만 견디면 뒤에 재밌어져요, 하는 조건이 붙지 않는다. 첫 장면부터 이야기의 물살에 가볍게 몸을 맡기면 놀이공원 급류타기처럼 유쾌한 속도로 흘러간다. 굳이 이 씬이 왜, 싶은 장면도 없다. 다 요긴하게 쓰인다. 다만 어떤 평론가는 조하와 그의 어머니 인숙(윤여정 扮), 역시 그와 한가율(한지민 扮) 등 주요 인물의 만남이 모두 우연에만 의존한다고 비난했지만 세상사 알고 보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나와 여러분의 지금이 모두 필연에 의한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그리고, 섬세한 연출과 정돈된 편집이 강점이다. 혹자는 결국 가족의 죽음으로 귀결되는 한국적 신파의 전형이라고 꼬집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 전형성은 적어도 영화 <신과 함께 1편 : 죄와 벌>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려도 무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영화는 무려 혼백이 된 자식이 모친을 찾아가 대면하며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여 관객의 눈물 콧물을 강탈한다. 반면, 적어도 <그것만이 내 세상>은 인물의 죽음을 신파로 강요하지 않는다. 죽음 역시 영화 안에서 그 어떤 직접적인 씬이나 시퀀스로 다루지 않았다. 심지어 묘한 변주로 리얼리티를 더하기까지 하는데 인숙과 진태(박정민 扮)의 병상 장면이 그렇다. 죽음을 앞둔 인숙이 아들 진태에게 사후 세계에서 재회하면 누굴 가장 먼저 찾을 거냐는 물음에 진태는 그의 이상형 한가율이라고 답한다. 클리셰의 파괴로서 이 정도면 충분한 자격을 가진다고 보는 바이다. 편집도 깔끔하기 그지없다. 컷과 컷, 쇼트와 쇼트의 연결이 리듬감을 가지기까지 하는데 여기에서 후에 더 자세하게 서술할 유머가 빛을 낸다. 영화 초반 오랜만에 상봉한 어머니 인숙이 세상 한량 같은 아들 조하에게 기거할 곳은 있냐는 물음에 아들은 “내가 어디 잘 데도 없는 사람처럼 보여요?!” 호언장담하는데,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조하가 인숙의 집 문을 열고 겸연쩍어하며 들어온다. 오디오 편집도 수준급이다. 진태의 생애 첫 피아노 경연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조하가 경연장을 빠져나와 인숙과 통화하는 오디오가 장면 전환보다 먼저 들린다.


  그러므로 능숙하고 숙련된 유머와 코미디가 백미다. 배우들의 후일담에 의하면 코믹 장면에서 상당한 비중의 애드리브가 허용됐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로 무분별하거나 난잡하지 않다. 딱 거기까지의 미덕을 지키면서 세련된 유머가 됐다. 함께 타고 가던 버스에서 급하게 내린 진태가 아파트 화단에 볼일을 보자 난처해하는 조하, 잠든 진태를 등에 업은 조하가 땀을 뻘뻘 흘리며 침대에 눕히자마자 곧바로 일어나는 진태, 인숙과의 조촐한 식탁 술자리에서 뜻밖에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조하, 폭소를 뿜게 되는 수많은 장면이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준비와 즉흥 연기였음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깨알 같은 장점까지 들여다보자면 비속어의 적절한 사용도 거론하고 싶다. 이제 한국 영화에서 ‘ㅅ발’, ‘ㅈ나’ 같은 욕은 빼놓을 수 없는 구성 요소가 된 지 오래다. 특히, 방송 심의 규제의 영역에서 비켜 있는 OTT 서비스의 드라마가 등장하면서 더 적극적인 리얼리티 장치로 활용되는 듯하다. 필자는 몇 해 전 넷플릭스 시리즈 <인간수업> 1화의 교실 장면에 등장하는 학생 연기자들의 구성진 육두문자에 ‘이게 진짜 학교지!’ 하고 매료됐었다. 그러나 작금의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그것들은 그야말로 지나치다는 감상이다.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맥락 없이 시옷과 지읒 발음하는 통에 요즈음은 귀가 시궁창이 되는 것도 같다. 그러나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거칠게 살아온 인물이 대체할 수 없는 부사처럼 사용하는 그것은 적절함을 넘어 불가피하다.


  잘한 것만 있다면 영화는 최종 스코어 340만 관객이 아니라 천만 영화가 됐을 터. 이제부터는 공평무사하게 약점과 한계도 들추어보겠다. 먼저, 필자의 개인적이고 소수 의견에 가까운 감상일지 모르겠으나 어떤 장면에서는 배경음악의 활용이 과하다. 주지하다시피 본 영화는 피아노 연주를 비롯한 음악이 결정적 소재로 등장한다. 역설적으로 관객의 감정을 움직여야 하는 어떤 장면에서는 그것의 사용을 절제했어야 더 유려한 완성도를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 인물의 피아노 선율에 매료되었는데 거기에 배경음악까지 데시벨을 높이니 옥상옥이 된다. 그리고, 날카롭고 뾰족하며 선명한, 그러니까 ‘오소독스’한 맛은 다소 떨어진다. <하모니>, <파파로티>, <미녀는 괴로워>, <고고 70> 등의 한국 영화가 기존하므로 음악을 주요 소재로 했다는 것만으로 차별성을 가지기 어렵다. 가족애의 회복이라는 주제 의식 역시 그것만으로는 독창적이진 못하다. 무엇보다, 장애인에 대한 영화적 사용은 비난받을 만하다. 진태의 장애적 특성을 활용한 반복적인 유머가 물론 그렇지만, 장애인 캐릭터를 도구화한 점은 특히 문제적이다. 영화는 장애인 진태 본인의 성장보다는 그를 계기로 한 조하와 주변 인물의 변화에 초점을 두었다. 영화 <말아톤>의 결말에서 장애인 초원(조승우 扮)이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하며 트랙 바깥의 응원객들과 손바닥을 마주치는 장면, 그 극적인 변화와 대비되는 지점이어서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은 잘 만들어서 제법 맛있는 한 끼 밥상이다. 개봉 후 수년이 흘러 다시 보니 더욱 그렇다. 내로라하는 연기자들이라는 좋은 재료, 정교한 레시피가 되는 시나리오와 내러티브, 요리사인 감독의 연출과 편집으로 대변되는 조리 기술, 유머와 코미디라는 향신료까지, 그 요리를 맛보러 부러 여행을 서둘러야 하는 별 세 개 정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곳에 간 김에 맛보면 좋다는 별 하나 식당쯤은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 끝으로, 혹자는 이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 <레인맨>의 소재와 설정을 답습했다고 지적하나 필자는 그것만큼은 분연히 일어나 반론하겠다. 두 영화가 공히 장애가 있는 형제를 소재로 다루고 있기는 하나 엄연히 <그것만이 내 세상>은 미국 영화와 결이 다른 가족, 장애, 사랑에 대한 한국적 정서를 가지고 있으므로 차별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유난한 찬바람이 불어오고, 나라 안팎으로 어수선한 세밑이 예상된다. 코딱지만 한 스마트폰 말고, 가족과 오순도순 둘러앉아 귤 까먹으며 영화 한 편 보시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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