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파란천막 이발소'에 오늘도 웃음꽃이 핀다. '수갑' 대신 '가위'를, '무전기' 대신 '바리캉'을 집어 든 이발사 때문이다. 건장한 체격의 이발사는 분무기를 연신 뿌려대며 엉겨 붙은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섬세한 빗질에 서러움이 빗겨나가고, "싹둑싹둑" 노련한 가위질에 해묵은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다.
태양이 본격적인 더위를 토해내던 6월 어느 날. 까만 가방을 어깨에 둘러멘 남성이 충주 재성이네 나눔쉼터에 나타났다. 익숙한 듯 빗과 가위, 바리캉, 스펀지를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놓자, 천막 아래에 어르신들이 줄지어 앉는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상냥한 질문에 할아버지는 "그냥 늘 하던 대로 해줘"라고 화답한다.
'가위손 경찰관' 이상희(52·서충주지구대) 경위는 이발 가방을 들고 12년째 어려운 이웃을 찾고 있다. 팍팍한 인생에 거칠어진 머리와 마음까지 다듬어 준다. 무료급식소부터 장애인시설, 요양원까지 어려운 이웃이 있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충주 곳곳을 누빈다. 이웃들의 머리를 잘라 준 횟수는 자그마치 5000번에 달한다.
지구대 일은 3조 2교대로 돌아간다. 밤낮이 계속 바뀌는 탓에 힘들 법도 하지만, 이 경위에겐 변명거리가 되지 않는다. 비번 날엔 어김없이 이발 가방을 둘러메고 운전대를 잡는다. 야간 근무 후 봉사활동까지 다니면 힘들지 않냐고 묻자, 손사래를 친다.
"교통계에 있다가 지구대로 옮겼어요. 이발봉사 때문이죠. 주간 근무만 하면 평일엔 못 나오잖아요. 이제 교대근무를 하니까 비번 날에는 이렇게 봉사활동도 다닐 수 있어요."
플라스틱 간이 의자와 가운만 있으면 근사한 숍이 만들어진다. 스타일 주문은 필요 없다. '저분은 상고머리, 저기 어르신은 짧게 친 스포츠머리…' 마치 컴퓨터처럼 제각각 머리모양이 입력돼 있다. 흰 가운을 목에 두른 '손님'은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가위손 경찰관에게 모든 걸 맡긴다.
형 때문에 가위와 바리캉을 쥐었다. 교정직 공무원인 이 경위의 형은 오래전부터 이발봉사를 다녔다. 평소 남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던 이 경위는 형을 따라 이발봉사 현장을 찾았다. 처음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빗자루로 쓰는 등 잡일을 도맡아 했다. 문득 '나도 어려운 사람들의 머리를 잘라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 어깨너머로 이발법을 배우고 익혔다. 2015년 이용사 국가자격증도 취득했다.
"처음 2년은 자격증 없이 머리를 잘라드렸어요. 제가 봉사 다니던 장애인시설 중학생 친구가 어느 날 저한테 '아저씨, 자격증 있어요'라고 물어보더라고요. 얼떨결에 있다고 대답했는데 마음에 걸려 따게 됐어요. 충주에선 시험을 볼 수 없어서 대구까지 갔다니까요. 처음엔 떨어지고, 두 번째에 합격했네요. 하하. 처음엔 손가락도 많이 다쳤는데 이젠 잘해요."
의자 높이가 낮아 머리를 손질하려면 연신 허리를 굽혀야 한다. 아스팔트의 열기에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땀 때문에 끈적해진 손과 팔목에 잘린 머리카락 조각이 들러붙는다. 허리가 아프고, 덥고, 간지러워도 참는다. 덥수룩한 머리로 쉼터를 찾아온 이들이 자신의 손길로 말끔해진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봉사로 수년째 이 경위와 인연을 맺어온 김창열(70) 재성이네 나눔쉼터 대표는 이 경위를 '충주의 자랑이자 귀감'이라고 표현한다. 김 대표는 "(경찰 업무와 봉사활동을 같이 하는 것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오는 데 나눔의 마음 없인 못하는 일이다. 야간근무를 하고도 온다. 사명감으로 봉사에 동행을 해주니까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날 이 경위는 오전 9시부터 점심시간까지 4시간여를 땡볕에 서 있었다. 모두 14명의 머리를 다듬었다. 고된 노동이지만 힘든 기색은 없다. 시원한 물 한 잔, 그리고 "경찰관 양반, 오늘도 고맙소" 말 한마디에 피로가 말끔히 풀린다.
"힘든 거요? 없어요. 그냥 재밌고 뿌듯해요. 제가 가진 기술을 베푸는 거잖아요. 대신 뿌듯한 순간은 셀 수 없이 많죠. 머리 깎아드리고 고맙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 기분이 최고예요."
인생의 목표가 있냐는 물음에 이 경위는 "근무하는 동안 아무 탈 없이 건강히 일하고, 쉬는 날엔 봉사활동도 다니는 게 꿈"이라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