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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Feb 04. 2024

너도 나도 아픈 시대의, 행진

《젊은 근희의 행진》 리뷰

젊은 근희의 행진

저자 이서수

출판사 은행나무

출간일 2023.05.30

페이지 344


《2023 제 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인상적이었던 <젊은 근희의 행진>을 표제작으로 한 단편집이 나왔길래 궁금해서 읽었다. 예상대로 세태를 보여주는 유형의 단편들 위주였다. 구로디지털단지역의 대륭포스트타워, 낙성대 전세, 당근마켓, 유튜버, 내일채움공제, 부동산 열풍, 코로나 시대 등 시의성이 강한 소재들이 산재해 있다. 실제로 대륭포스트타워 N차 근처에서 일한 적이 있고, 낙성대에 있는 월셋집에 살아봤고, 당근마켓에서 동네 사람을 만난 적이 있고, 유튜버를 관종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들의 수입을 부러워해봤고, 내일채움공제는 현대판 노예제 아니냐고 하면서도 조건을 알아봤고, 코로나 때쯤 집값이 폭등했을 때 자가가 없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이 초조했고, 코로나 시대에 주변 이들과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이런 경험들을 해 온 나에게 이 책은 고단한 나의 현실을 꺼내보게 만들었다. 게다가 마침 이 책을 읽을 즈음에 이사를 준비해야 했던 때였다. 이 소설집에는 주거불안정에 시달리는 인물이 자주 등장하는데 나에게 닥친 현실적인 문제 그대로라서 읽으면서 많이도 서글펐다. 특히 <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의 참새 죽이기와 지금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겹쳐본 부분에서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다.

(전략) 근데 학살 방법이 너무 단순하고 끔찍했어. 참새가 절대로 내려앉지 못하게 한 거야. 그 어디에도 내려앉지 못하게 했어.
그게 말이 돼? 말이 안 되지. 근데 그렇게 했어. 인간들이 독하게 그렇게 했어. 내려앉으려는 참새만 보면 계속 내쫓았어. 결국 참새는 공중을 계속 날다가 힘없이 떨어져 죽었어. 너무나도 고단하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견디다가. 근데 사영아.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집이 없는 우리도 그 참새 같다는 생각. 정착하지 못하는 우리가 바로 그 참새 같다는 생각. 어디에도 내려앉아서 쉴 수가 없잖아.


가치관과 맞지 않는 성인 웹툰을 그리는 일을 하다가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증이 온 <미조의 시대>의 수영 언니, 툭하면 여기저기가 아파서 병원에 다니는 <젊은 근희의 행진>의 엄마, 신혼집을 사지 않았다가 부동산 광풍과 함께 평생 집을 못 살까봐 불안해지면서 과민성 방광이 온 <나의 방광 나의 지구>의 그, 회사의 공시로 과로하느라 어지럼증이 생긴 <재활하고 사랑하는>의 나 또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여러 스트레스로 탈모가 온 주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각종 OO염은 기본이고 과민성 OO, 원인을 알기 힘든 어지럼증도 익숙하다. 이토록 집단적으로 정신의 아픔이 몸의 아픔으로까지 전이되고 있는데, 근본적인 치료는 엄두를 낼 수 없다. 소위 말하는 현대인의 질병세트 중 한 증상으로 병원을 찾으면 의사에게 공통적으로 듣는 말이 '규칙적인 생활, 스트레스 줄이기'인데, 이 말이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현대인은 아무도 없다. 생활 패턴을 결정하는 건 사실 나 자신이 아니라 일이고, 이 사회에서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할 수 있는 건 결국 약으로 증상을 못 느끼게 하는 것뿐이다. 이건 더 이상 개인의 질병이 아니라 집단적 병듦이다. 집단적으로 병든 사회는 '너만 아픈 거 아니'라고 자꾸 아픔을 당연시한다. 이런 사회상을 잘 집어내고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시의성 있는 세태 소설류를 좋아하는 편이라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몇몇 작품에 서사나 인물들이 산만한 느낌이었다는 점, 현실적 기조 속 비현실적 요소들이 어우러지지 못하고 다소 삐그덕거린 점은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병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고단한 1인으로서 (좋은 의미에서) 짜증날 정도로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았다. 이미 전에 읽었던 <젊은 근희의 행진>의 마지막을 알면서도 읽을 때마다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흐른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 같은 이들도, 나도 가여워서. 마치 상처 주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위로의 말을 들었을 때 울음이 터지는 것처럼, 세상에 우리 존재를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가 주는 찡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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