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마지막 하루는 아무것도 안하기로 했다.
호텔 인피니티 수영장에서 하루종일 뒹굴기로 한국을 떠나올 때부터 작정했었다.
하루만의 사치와 게으름을 내게 허용했다.
평일 느즈막한 오후, 수영장에는 아무도 없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수영을 했다. 힘들면 쉬었다. 그리고 다시 수영을 했다.
평영을 하다 힘들면 배영을 하다 접영도 흉내냈다.
때로는 물 위에 물에 젖은 널판지마냥 둥둥 떠있기만 하기도 했다.
저녁이 될 때까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무언가에 늘 바빴던 시간들과 너무 다른 시간속에 있다보니 불현듯 왠지모를 두려움이 밀려온다.
어렸을 때 읽었던 ‘수영장 하수구가 블랙홀로 연결되어 있다’는 설정의 만화가 갑자기 떠오르자 더 이상 수영장에 머무를 수가 없다.
온통 금빛으로 치장한 호텔은 욕조마저 금빛이다.
그 황송한 욕조에 따듯한 물을 받고 몸을 담갔다.
피곤이 몰려온다.
내일은 떠나는 구나.
이제야 ‘고수’의 맛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는데...
하노이에서 스쳐갔던 바람과 거리의 풍경과 별들이 욕조 물위에 둥둥 떠다닌다.
#아무것도하지않는건정말힘든일이다내게는 #하지만그런날이필요하다 #고수맛을이제야 #나는어디로가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