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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목 Jan 30. 2023

大寒 : 세상이 뜻대로 되지는 않아도 봄은 오겠지


2022년의 대한. 분명 소한만큼 추울 날이 없을거라 생각했다. 소한보다 대한이 따뜻하다는 결론은 수 천년의 시간이 지나오면서 쌓아올린 자연의 섭리와도 같은 일이니까. 그런 섭리를 나는 철썩같이 믿고 있었고 따뜻한 대한을 기다리며 운동을 시작할 마음과 동네 산책을 할 마음을 품고 있었다. 나가는 것을 원체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품은 마음이 낯설어서인지 하늘도 낯설은 날씨를 보낸다. 나가려는 나의 마음의 강도를 가늠이라도 해보려는 듯. 몇 년만에 가장 추운 날씨를 들이밀었다. 체감 온도는 -27도까지 떨어졌고 장갑을 끼지 않고선 5분이상 밖에 서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 시험대는 차갑기만 했다. 의지는 얼어붙어버리고야 말았다.


의지가 박약한 스스로를 탓할 순 없었다.

그저, 하늘이 이런 날씨를 내린 이유가 있으리라 지레 짐작할 뿐이다.


날이 이토록 추워진 원인이 집을 나가려는 마음을 먹은 나에게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스스로를 탓하는 순간 나의 자존감은 ‘나는 역시’라는 구의 시작으로 바닥을 향해 내려갈 것임을 알기에 날씨의 원인을 주변으로 돌려야 했다. 새해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절기인 만큼 나처럼 밖에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들도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 독서, 공부, 저축, 인간관계. 그들의 다짐 역시 대부분은 평소에 하지 않았던 낯설은 것들에 대한 다짐이겠지. 변덕스러운 날씨의 시련의 책임은 그들에게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행이다.


비록 밖에 나가려는 나의 낯설은 다짐을 만나는 시간이 조금 더 뒤로 미루어졌지만 하늘에 대한 원망이나 낯선 다짐을 한 전 인류를 향한 원망의 감정을 오래 붙잡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무엇이나 누군가를 오래도록 원망할 성격이 되질 못한다. 사업이 무너졌을 때도,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도, 교통사고가 났을 때도. 원망은 하루 이틀이 다였다. 원망을 한다고 돌아올 시간도 아니려니와 바로잡아질 일들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망은 남기지 않으려 했지만 남는 후회는 어찌할 수 없었다. 남아있는 후회는 늘 스스로를 다잡아 살 수 있도록 만들어줄 퇴비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원망과 지난날에 대한 걱정이 없어 보이는 나의 모습을 부러워 했다. 부모님은 그와 반대로 늘 천하태평하다며 게으르고 걱정거리인 자식으로 판단하는 근거로 삼았지만. 나는 늘 그렇게 믿었다. 삶에는 흐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는 흐름이 있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게 되는 흐름이 있다고. 어쩌면 그런 이유로 지난 일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을 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나열 해 놓은 계절에 우선순위가 있다. 겨울을 가장 사랑하고, 봄과 가을을 좋아하며, 여름은 그저 받아들이는 나다. 겨울을 사랑하는 이유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삭막한 세상을 하얗게 정화시켜주는 것 처럼 보이는 까닭이고 여름을 싫어하는 이유는 여름에 내리는 비가 맑은 세상을 흐리게 만드는 것 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이렇듯 분명하게 순위에 맞는 기다림 속엔 크고 작음은 있다. 그러나 계절 위에 서있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계절의 반가움과 흘러가는 계절에 대한 아쉬움이 공존하기도 한다. 세상이 온통 자그마한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던 봄의 끝무렵엔 여름을 기다리며 봄을 아쉬워했고. 지긋지긋한 더위와 비가 그쳐갈 여름의 끝 무렵엔 가을을 기다리며 여름을 아쉬워했다. 흰 눈으로 온 세상이 뒤덮일 겨울이 가까워지던 시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토록 싫어하는 여름의 계절마저 가을이 다가올 때면 아쉬워 하는 이유는 다가올 미래를 기다리는 것은 바라는 마음과 지나가는 현재를 아쉬워하는 것은 살아가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는 한 계절을 보내며 한 계절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늘 품고 산다.


그러니 나는 봄이 지척에 다가왔음을 알리는 대한의 추위가 아무리 거세더라도 괜찮다. 날이 추운 만큼 봄은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겠지. 매년 다시금 웅크리게 만들던 추운 봄의 꽃샘추위도 이번만큼은 대한의 추위를 이길 재간이 없을 것이 틀림없다. 살아있던 것들 마저 고개를 집어 넣게 만드는 추위를 우리는 즐겨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웅크림의 끝에 다가올 노란 개나리들을 상상하며,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풀 향기가 가득한 잔디를 걸을 날을 기다린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여름 비를 담아낸 속담이 있듯 뼈가 시리도록 차가운 이번 추위 뒤에 봄은 더욱 짙어지지 않을까. 어찌되었던 봄은 올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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