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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May 12. 2024

결혼도 안 한 남자가 생각하는 이혼

결혼을 못한 남자에게 이혼은 우주 멀리 떨어져 있는 안드로메다 은하처럼 멀게 느껴진다. 이혼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왜 이혼을 할까? 얼마나 배우자가 싫으면 헤어질까?


결혼한 커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신기하기도 하고 질투도 난다. 소개팅을 나갔는데 첫눈에 보자마자 '이 남자와 결혼할 것 같다.'는 이야기는 소개팅만 나갔다 하면 차이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화가 날 정도로 부러운 이야기다.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 온 세상이 어두워지고 이 여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쳤다는 이야기, 이 사람이다 싶었다는 말, 내 평생의 반쪽을 선택하고 선택받았다는 말은 선택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확신과 결심, 용기들은 한 번도 못 느껴본 말들이다.


그렇게 확신을 갖고 결혼을 했는데 이혼을 한다. 천국을 기대하고 꿈꾸고 결혼을 했는데 얼마나 지옥 같으면 남은 평생 함께 살겠다는 굳은 서약을 파기할까? 만인들 앞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믿고 소중히 여기겠다는 약속을 합의하에 깨뜨린다. 얼마나 결혼생활이 힘이 들면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면 이혼을 할 것 같다.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것 같다. 남자와 여자가 성적인 행위를 하면 보이지 않는 어떤 초월적 관계가 형성된다고 한다. 그 초월적 관계는 오로지 부부사이에서만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게 되면 자신의 소중한 관계들이 무너지고 깨어지면서 사태가 심각해진다. 조강지처 버리고 잘 된 사람 없다는 말처럼 끝이 아름다운 불륜은 절대로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이 문제다. 왜냐하면 아주 당연하게도 배우자는 이 세상 최고의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 예쁘고 날씬하고 상냥한 여자들이 수두룩 빽빽이며 더 돈을 잘 벌고 자상하고 잘 생기고 좋은 차를 타는 멋진 남자들이 길거리 돌멩이처럼 발에 차이기 때문이다. 배우자는 최고의 남자도 아니고 최고의 여자도 아니다. 물론 나도 그렇다. 잘난 게 있고 못난 게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어쩌면 나나 배우자는 평범에도 한참 못 미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 남편, 내 아내를 최고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여기는 게
지혜로운 결혼생활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좋아하는 걸 넘어서 심지어 다른 남자, 여자와 관계를 맺고 싶다면 어떻게 할까? 바람을 피워야 할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두 사람과 초월적 관계를 맺는 것은 날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 잡혀  자기와 자신의 가정 모두 송두리째 낭떠러지로 떨어뜨리는 어리석고 이기적인 파멸적인 욕망이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 그건 도둑질이 너무 하고 싶어 미쳐버릴 것 같다는 사람에게 도둑질을 허용하면 안 되는 것과 같다. 절대로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비뇨기과 가서 일시적 성욕감퇴 처방을 받거나 심리상담을 받거나 교회에 가서 성직자와 상담을 해보길 추천한다.   


 나이가 들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직장생활이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 때면 '아, 일만 하라면 괜찮겠는데 인간관계 때문에 진짜 직장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었다. 그런데 직장생활은 일만 하는 게 아닐 란 걸 알았다. 직장생활에는 일도 있고 인간관계도 있고 똘아이 같은 상사도 있고 싸가지 없는 후배도 있고 이기적인 동료와 함께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지내는 게 직장생활이라는 걸 알았다. 직장생활이란 단어에는 그런 쓰디쓴 맛들도 모두 들어있는 거라는 걸 알았다. 결혼생활도 그렇지 않을까? 함께 하는 시간, 인정하는 말, 선물, 스킨십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만이 누릴 수 있는 찬란하게 빛나는 장밋빛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어두운 면도 있다. 같은 공간에 숨 쉬는 것도 싫을 만큼 꼴 보기 싫은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하는 고통, 부글부글 끓는 분노를 참아내고 속이 새까 많게 타들어갈 정도의 괴로움들도 모두 결혼이라는 단어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나는 결혼을 하면 배우자를 내 딸처럼 여기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남자의 역할은 여자를 양육하고 보호하는 거라고 배웠는데 마치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듯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다면 배우자를 소중히 여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알고 배운 대로 내 배우자를 최고로 여기고 딸처럼 소중히 여길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세상에 온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조금만 가까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막 한가운데 심긴 말라비틀어지고 뒤틀어진 나무처럼 형편없는 게 우리 모습이다. 아무리 예뻐도, 잘 생기고 멋지고, 학벌이 좋고 돈을 잘 벌어도 사람은 모두가 죄인이고 문제투성이들이다.



결혼도 안 한 사람이 결혼생활에 대해 말한다는 게 부끄럽다. 그리고 이혼을 결정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당사자들에 대해 내가 뭘 안다고 이런 말들을 하겠는가? 어쩌면 무례하고 철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세상의 가정을 위해 기도한다. 가정의 결혼이 유지되길 기도한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고 부모와 자식이 서로 사랑하길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가정의 주인이 되어주시고 지켜주시길 기도한다. 이혼이 줄어들면 좋겠다.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조금만 더 사랑한다면 조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가정에 사랑의 마음을 부어주시길 기도한다.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에베소서 5장 33절

However, each one of you also must love his wife as he loves himself, and the wife must respect her husband. Ephesians 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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