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어떤 구청에서 서울시 교육청으로 인사교류를 신청했었다. 공무원들은 인사교류를 할 수 있는데, 구청에서 일하는 지방직 공무원들이 국가직 공무원이나 교육청 공무원들과 서로 1:1 매칭으로 교류를 할 수 있다. 조건은 서로 동일 직군, 동일 직급이어야 한다. 공무원들의 인사교류 웹사이트가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자신은 구청에 있고 서울시교육청으로 가고 싶다고 글을 올리면 반대로 서울시교육청에서 구청으로 가고 싶은 공무원이 서로 연결이 되어 조율을 한다. 둘이 이야기가 잘 되면 각자의 기관의 인사팀에 이야기하고, 기관의 인사팀 직원들이 서류를 주고 받고, 가게 될 기관의 면접도 본다. 모든게 통과되면 드디어 소속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매칭 상대방을 찾기도 어렵고 이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이뤄지지는 않는다. 나도 몇 개월동안 마음을 고생을 했었지만 감사하게도 서울시교육청에서 근무하고 있던 지방시설관리주사보 주임과 교류를 했다.
서울시교육청 안에는 여러 교육지원청이 있다. 나는 서울시교육청 본청으로 가고 싶었지만 교육지원청 소속이 되었다. 교육지원청 안에 어떤 학교나 부서로 발령을 받을지 궁금했는데, 성북구청을 떠나기 전날 알게 되었다. 문자가 왔는데, 서울의 어떤 유치원이었다. 초중고등학교나 교육청 본부로 발령을 받을 줄 알았는데, 유치원으로 가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정식 출근 전날 발령인사를 드리러 가보니 초등학교 안에 있는 유치원이었다.
유치원에는 원장님과 선생님, 교육행정직원 2명, 영양사가 있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유치원 안에 행정실과 교무실이 있었다. 구청과 주민센터에 근무했던 나는 다른 세상에 온 것 만 같았다. 직원은 모두 여자였고, 남자는 유일하게 나 혼자였다. 유치원 선생님들과 생활을 하는 것도 신기했다. 유치원생 아이들이 얼마나 예쁘고 귀엽던지, 너무 안아주고 싶었다. 아이들은 나를 보면 허리를 숙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주무관님, 안녕하세요."
"안녕."
아이들 이름을 하나씩 외워갔다. 유난히도 예쁘고 귀여운 애들이 있었고, 새침하고 심술궂은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 유치원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비가 오면 벽에서 물이 세서 계단에 물이 흥건하게 고였다. 러그를 깔아도 금세 러그가 흠뻑 젖었다. 유치원 아이들은 신발을 벗어서 신발장에 놓고 양말만 신은 체 돌아다닌다. 선생님들은 슬리퍼를 신지만 아이들의 양말이 젖는 불편한 상황이었다. 두 번째 문제도 물문제였다. 2층 도서관 에어컨의 냉각수가 주기적으로 벽을 타고 흘러내려서 벽면의 도배상태가 엉망이었다.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그 문제 때문에 교육청 시설담당자도 오고 관련분야 전문가들도 왔지만 해결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어떻게든 이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 오는 날 아이들의 양말을 젖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양말이 젖어서 축축한 일만큼 짜증 나는 일도 없지 않은가? 아이들은 짜증 나는 것도 잘 모르고 지낼 수 있겠지만, 그 조그만발을 감싸고 있는 양말이 젖어 있는 모습을 보자, 가슴에 불이 불었다. 먼저 창틀에서 물이 세고 있었기에 실리콘을 추가로 발라봤는데, 하지만 역시 해결되지 않았다. 몇 차례 계속 도전을 했는데도 물은 계속 샜다. 오기가 생기고 어느 날은 화가 났다. 그래서 기존 창틀 하단에 있던 실리콘을 모두 제거해 버렸다. 실리콘을 모두 벗겨내니 물이 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창틀 프레임 안쪽으로 물이 계속 들어왔고 창틀을 받치고 있던 벽면 상단이 건물 내부로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니 비가 오면 창틀 프레임을 타고 최하단으로 흘러 내려온 빗물이 콘크리트 벽의 기울어진 방향인 실내로 계속해서 흘러내렸던 것이다.
원인을 알게 되었으니 솔루션을 찾아야 했다. 창틀 프레임 전체를 교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거대하고 복잡한 창틀 프레임의 어디에서 프레임 안쪽으로 물이 타고 들어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물이 건물 내부로 흘러들어오지 않고 외벽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전동드릴을 이용해서 외벽 쪽으로 물길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방수실리콘을 충분히 도포해서 외벽이 손상되지 않으면서 물이 바깥으로 잘 빠져나갈 수 있도록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비만 오면 계단에 물이 고여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더 이상 비가 세지 않게 되었다. 전문가들이 와서 아무리 해결해보려고 해도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 것이다. 할렐루야! 원장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그 이야기를 두고두고 말씀하시며 칭찬을 해주셨다.
두 번째 문제인 에어컨 냉각수가 벽면으로 흘러넘치는 상황도 해결을 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에어컨을 켜고 꺼보기만 했지 에어컨의 구조와 원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먼저 유치원 에어컨을 담당하는 업체 직원에게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에어컨 냉각수를 외부로 방출하는 튜브에 문제가 생겨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튜브만 교체하면 될 것 같다는 말에 왠지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이 세는 벽면 위의 천장 플레이트를 걷어내고 내부를 살폈다. 어두컴컴한 천정내부가 보였다. 회색의 물체가 있어서 기겁을 했는데, 자세히 보니 돌이었다. 에어컨 튜브를 찾았다. 과연! 에어컨 냉각수 튜브가 중간에 빠져있었다. 그러니 에어컨에 나오는 냉각수가 천정과 벽을 타고 흘러내렸던 것이다. 연결 부분이 오래되고 낡아서 튜브를 교체해야 했다. 서둘러 근처 철물점에 가서 튜브를 사 왔다. 에어컨 본체와 연결된 튜브와 내가 사 온 튜브를 테이프로 단단히 연결했다. 그리고 튜브를 바깥쪽으로 빼고 입구를 봉했다. 결과는 역시 대성공이었다. 더 이상 물이 세지 않았다. 도서관 벽면에 더 이상 물이 세지 않도록 수리를 완료했다고 보고를 했다. 원장님께서 또다시 엄청나게 기뻐하시면서 칭찬을 해주셨다.
지난 수년동안 해결되지 않던 유치원의 고질적인 문제를 인사교류를 해서 온 직원이 단번에 해결한 것이다. 원장님께서 나를 얼마나 아끼고 예뻐하셨는지 모른다. 살면서 나를 이렇게나 예뻐하는 어른을 만나본적이 없었다.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셨다. 나에게 정말 많은 사랑과 관심을 베풀어주셨다. 직장상사이시면서도 인생의 멘토셨다. 유치원에 근무하는 동안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큰 도움을 주셨다. 나는 원장님을 은사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면서 직장상사가 은사 된다는 건 기적 같고 감사한 일이다. 날씨가 추워졌는데 안부인사도 드리고 연말에 선물도 보내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