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니스 Oct 27. 2022

엄마가 떠나간다

제발 일 좀 그만해!! 루푸스가 화났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 주말이 지나고 8월 23일 처서 당일 엄마는 구내염이 너무 심하다고 했다. 입맛도 없어서 살이 계속 빠지고 뭘 먹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매 여름마다 강원도 평창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엄마는 정말로 몸이 안 좋았는지 남은 숙박 예약을 모두 취소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 정도면 진짜 몸이 안 좋긴 한 거다. 엄마의 본업은 26년 차 보험회사 설계사다.

(설계사는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출퇴근은 본인 자유다 그렇기에 여름 펜션 장사도 가능한 상황)

평창에서 서울로 돌아온 그날 그동안 사무실에 못가 일이 밀렸다며 기어코 회사에 다녀왔다. 택시를 탈법도 한데 어김없이 지하철을 탔다.


가족들이 하지 말라고 항상 뜯어말리는 그 펜션은 엄마가 6년 전 이모들과 투자 관계가 얽히면서(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어쩔 수 없이 엄마 앞으로 사업자를 내면서 엄마가 운영을 시작했다. 일명 한철 장사로 유명한 흥정계곡 앞 펜션이다. 엄마는 늘 영업과 돈에 찌드는 보험 설계사의 삶이 피곤했는지 생각보다 괜찮은 여름 장사에 운전도 못하고 차도 없지만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억척스럽게 장사를 했다. 본업 때문에 도와줄 수 없는 가족들은 그렇게 힘들게 서울과 평창을 오가는 게 안쓰럽고 괜히 죄스러웠다.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비워서 뭐하냐며 꼭 여름마다 가서 고생을 해서 가족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회사에 다녀온 엄마의 통화 목소리는 금세 늙어버려 성대마저 떨렸고 말도 어눌해지고 있었다.

멀리 영천에 살고 있는 나는 당장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불안감을 돈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당장 뉴케어도 주문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호수 삼계탕도 집으로 배달시켰다. 맛있고 좋아 보이는 비싼 과일도 고르고 골라서 두 박스를 서울로 택배를 보냈다. 혼자 다 드시고도 남을 테였지만 뭐 남아도 상관없었다. 추석을 앞둔 그다음 주에 이제 막 과일을 먹기 시작한 8개월 귀염둥이 손녀와 함께 친정집에서 3대가 두런히 앉아 같이 먹을 생각이었다. 손녀만 있다면 웃음꽃은 문제도 아니다. 손녀만 보면 엄마는 금세 다 나을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엄마는 응급실에 갔다. 엄마의 단골(?) 병원 집 앞 ㅂ병원. 엄마는 10년 전 자궁경부암 수술을 그곳에서 받았고 5년 전 루푸스를 그곳에서 진단받았다.

(*루푸스 : 류머티즘 질환의 하나로 자가면역질환이라 불리며 희귀 질환의 일종이다.)

사람이 지독히 많았던 여름밤의 응급실 엄마는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이 되어서야 진료를 받았다.

백혈구 수치와 염증 수치가 좋지 않아 당장 수혈을 하고 며칠 입원해서 기력을 회복하자고 하였다.


가족들의 타박은 또다시 이어졌다. 그놈에 펜션 하지 좀 말라고 했지? 아픈 사람이 왜 자꾸 일을 벌여서

병원신세를 또 지는지 고집불통인 엄마를 모두 나무랐다.

여름에 장사하느라 고생했으니 이렇게 된 거 병원에서 며칠 푹 쉬고 나오라고 했다. 그제야 루푸스 카페들을 찾아보았다. 엄마는 루푸스라고 진단은 받았지만 특별히 아픈 곳이 없었다. 처방된 스테로이드를 꾸준히 복용하긴 했지만 아픈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루푸스가 활성기에 들어가면 면역 수치가 떨어져 종종 입원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많다고 했다. 엄마도 지금 좀 피곤해서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거라 생각했다.


그다음 주에 길게 서울에 있으면서 엄마 보양식을 뭘 해줘야 하나 고민했다. 외출 다 취소하고 퇴원한 엄마 옆에만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항상 늘 끔찍이 보고 싶어 하는 우리 시윤이와 함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