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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2)

by 그린

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을 지나 다가온 여름. 나는 여름이 주는 것들을 좋아한다. 눈 부신 햇살, 맑은 하늘, 뭉게구름, 푸른 녹음, 다시 찾아온 햇빛을 환영하러 거리 위에 나온 사람들, 가벼워진 옷가지와 선글라스, 여름휴가, 바다, 새로 산 수영복, 캠핑, 시원한 맥주 같은 것들 모두. 어째서 여름과 함께 오는 것들은 반짝거린다.


나에게도 뜨거운 태양 빛, 습한 온도가 싫었던, 여름이 싫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그곳으로 옮겨 살기 시작하면서 여름의 모습들을 알기 시작했다. 그때 만난 친구들이 알려줬다.


모두에게 새로운 시작이었던 봄, 우리는 서로를 알게 되었고 그렇게 꼬박 일 년을 함께하며 한 해를 보냈다. 데면데면한 봄을 지나 뜨거운 여름이 왔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끌어당기며 여름이 주는 햇빛을 받아먹고 푸르게 푸르게 잎을 돋아냈다.


우리는 점심시간이 되면 식당에 모여 좁은 테이블에 의자를 붙여 앉아 매일 점심을 같이 먹었다. 수업이 끝나면 적당한 곳에 대충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옆 동네에서 축제를 하면 다같이 모여 축제에 갔다. 한 손에는 편의점에서 산 맥주를 어김없이 들고있었다. 막대에 꽂혀 얼음 사이에 누워있는 파인애플을 한 개씩 사 들고 빼곡히 앉은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아 시원 눅눅한 여름밤 사이로 빛나는 불꽃들을 보았다.


어떤 날은 친구가 집에서 빌려온 차를 타고 어설픈 운전 실력으로 슈퍼에 들러 고기와 소시지 같은 것들을 잔뜩 샀다. 계곡 옆 자리를 잡고 숯불을 피워 익은 건지 아닌지 모를 고기를 구워 먹으며 바비큐를 했다. 낮에는 시원함이 흐르는 계곡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서로의 몸의 끈적함을 느끼며 드러누워 검고 깊은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날이 밝으면, 갈아입을 옷도 샤워장도 없는 인적 없는 바다에 들러 그런 것쯤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 흠뻑 젖어 장난치며 놀았다. 사소한 것들로 깔깔대며 웃었고, 사사로운 것들로 정색을 하며 싸웠다. 우리는 언제든 마음껏 축축해지고 짭짤해질 수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말갛고 뜨거웠다. 뜨거움을 식히려 차디찬 맥주를 마셨고, 당연하게도 더욱 뜨거워질 뿐이었다. 그 시기를 지나니 여름은 나에게 재밌는 일이 일어나는 계절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나니 아무런 이유 없이, 사건도 없이, 마치 그렇게 될 일이었다는 듯 우리는 자연스레 멀어졌고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다.


그때 그 밀도 높고 마법 같은 시간들로, 나는 영원히 돌아오는 세상의 한 부분을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영원히 존재하는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건 꽤나 괜찮은 일이다. 그때 이후에도 우리는 가끔 모여 맥주를 마셨지만 이상하게도 그때만큼 서로를 끌어당기지 못했다. 그 시절 만큼 뜨거워질 수도, 축축해질 수도, 짭짤해질 수도 없었다.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가끔은 그리워지다가도 그 친구들이 남겨준 영원함을 생각한다. 다시 돌아올 뜨거움을 생각한다. 생각을 하다 뜨거움을 온몸으로 받으러 밖으로 나가본다. 햇빛을 받으며 걷다보니 몸이 간질간질 하다. 어쩌면 지금도 푸른 잎을 돋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여름이 가고, 또 여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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