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6시알람이 울린다. 중2큰딸을깨워야 한다. 오늘부터 기말고사다. 대기업의 도움을 받아 소고기 뭇국을데우고 냉동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시험 첫날 따뜻한 국물에 속을 든든히 채웠으면 했다. 엄마의 할 일은 끝. 내 몸은 자석에 끌리듯 이불로 향한다. 여기는 원래 내가 있어야 할 자리라며 포근히 감쌌다. 출근 전 알람을 재설정해놓아야 하는데 이미 내 정신은 다른 어딘가로 떠났나 보다. 그 미지의 세계에서 한참을 떠돌아다니다눈을 떴는데 8시 52분이다. 네?! 생각할 틈도 없이 고양이 세수를 하고 교복과도 같은 옷을 막 껴입었다. 양치는 출근해서 하지머. 헐레벌떡 지각을 면하는 마지노선인 9시에 신호등을 건널 수 있었다. 성큼성큼 몇 발자국 뛰어가면 직장이다. 눈뜨고 도착하니 8분 걸렸다. 신기록이다. 신이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단거리 출근시간이 아닐까.
일찍 일어나 딸내미 밥을 줄 수있어엄마로서의 역할은뿌듯했지만 나에게는 진 느낌. 지각은 면했지만 급하게 출근하느라마음의여유가 없었다.일어나서 다시 눕지만은 말아야지. 오늘 같은 상황은만들지 않아야겠다며다짐을하였다.
퇴근하기 10분 전 태권도다녀온 둘째가 집에같이가자며 전화가 왔다. 5분넘게 기다려야 해서 추운데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기다린단다. 마음이 급해진다. 마지막 환자가 나가고 뒷정리를 한 후 패딩을 입고 가방을 꺼냈다. 실장님에게먼저 나간다고 인사를 했다. 문을 열자마자 둘째가 나를 반긴다. 건물 밖으로 나가는데 바닥에 뭔가 거슬린다. 딸의 신발끈이 풀려있다. 자꾸 풀린다고 해서 꽁꽁 두 번 매듭을 지었다. 신호등 바로 옆에 붕어빵 매대가 있다. 저녁 먹기 전이지만 딸이 먹고 싶다고 하여슈크림 두 개,팥 두 개를 샀다.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는 딸내미. 화장실이 가고 싶어 붕어빵을 못 먹겠단다. 걷다 보니 괜찮아져서 이내 뜨거운 붕어빵을 손에 쥐고 호호 불어가며 먹었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이내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다.
"아까 속상해서 울었어"
"왜? 누가 괴롭혔어?"
"아니, 친구부모님이 이혼한 걸 알게 되었는데 같이 얘기하다가 우리 집이 그렇게 된 걸 상상하다 눈물이 났네"
남편과 나 사이 문제가 있었다면 뜨끔 했겠지만 그런 일은 없어 딸의 말에 개의치 않았다.
"어머니한테는 그냥 말해도 되는데 아버지한테는 말 안 해야지" 의아했지만 내심 흐뭇하기도. 나에게 스스럼없이 말해주는 딸이 고마웠다.
짧은 출퇴근 시간이 행운인 건 나에게만 해당되었다.딸과의 데이트를 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시간. 붕어빵 하나 물고 조잘조잘 떠드는 순간.엄마에게만 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이럴 땐 직장이 조금 더 멀었으면. 5분 만에 집에 도착해 버렸다.
오늘 나에게 허비한 시간은 실망스러웠지만 엄마로서의 소소한 역할은 이룬 것 같아 위안이 되는 날이었다. 하루에 두 가지의 역할을 다 해내는 나였으면 좋겠지만 하루는엄마로 내일은 또 나로서의 날로 균형 있게 배분해야지.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게 일상. 하나만 해도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