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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Dec 10. 2024

하나만 해도 성공이다


월요일 아침 6시 알람이 울린다. 중2 큰딸을 깨워야 한다. 오늘부터 기말고사다. 대기업의 도움을 받아 소고기 뭇국을 데우고 냉동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시험 첫날 따뜻한 국물에 속을 든든히 채웠으면 했다. 엄마의 할 일은 끝. 내 몸은 자석에 끌리듯 이불로 향한다. 여기는 원래 내가 있어야 할 자리라며 포근히 감쌌다. 출근 전 알람을 재설정해놓아야 는데 이미 내 정신은 다른 어딘가로 떠났나 보다. 그 미지의 세계에서 한참을 떠돌아다니다 눈을 떴는데 8시 52분이다. 네?! 생각할 틈도 없이 고양이 세수를 하고 교복과도 같은 옷을 막 껴입었다. 양치는 출근해서 하지머. 헐레벌떡 지각을 면하는 마지노선인 9시에 신호등을 건널 수 있었다. 성큼성큼 몇 발자국 뛰어가면 직장이다. 눈뜨고 도착하니 8분 걸렸다. 신기록이다. 신이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단거리 출근시간이 아닐까.

일찍 일어나 딸내미 밥을 줄 수 있어 엄마로서역할은 뿌듯했지만 나에게는 진 느낌. 지각은 면했지만 급하게 출근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일어나서 다시 눕지만은 말아야지. 오늘 같은 상황은 만들지 않아야겠다며 다짐을 하였다.






퇴근하기 10분 전 태권도 다녀온 둘째가 집에 같이 가자며 전화가 왔다. 5분 넘게 기다려야 해서 추운데 먼저 들어고 했다. 기다린단다. 마음이 급해진다. 마지막 환자가 나가고 뒷정리를 한 후 패딩을 입고 가방을 꺼냈다. 실장님에게 먼저 나간다고 인사를 다. 문을 열자마자 둘째가 나를 반긴다. 건물 밖으로 나가는데 바닥에 뭔가 거슬린다. 딸의 신발끈이 풀려있다. 자꾸 풀린다고 해서 꽁꽁 두 번 매듭을 지었다. 신호등 바로 옆에 붕어빵 매대가 있다. 저녁 먹기 전이지만 딸이 먹고 싶다고 하여 슈크림 두 개,  두 개를 샀다.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는 딸내미. 화장실이 가고 싶어 붕어빵을 못 먹겠단다. 걷다 보니 괜찮아져서 이내 뜨거운 붕어빵을 손에 쥐고 호호 불어가며 먹었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이내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다.

"아까 속상해서 울었어"

"왜? 누가 괴롭혔어?"

"아니, 친구 부모님이 이혼한 걸 알게 되었는데 같이 얘기하다가 우리 집이 그렇게 된 걸 상상하다 눈물이 났"

남편과 나 사이 문제가 있었다면 뜨끔 했겠지만 그런 일은 없어 딸의 말에 개의치 않았다.

"어머니한테는 그냥 말해도 되는데 아버지한테는 말 안 해야지" 의아했지만 내심 흐뭇하기도. 나에게 스스럼없이 말해주는 딸이 고마웠다.

짧은 출퇴근 시간이 행운인 건 나에게만 해당되었다. 딸과의 데이트를 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시간. 붕어빵 하나 물고 조잘조잘 떠드는 순간. 엄마에게만 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이럴 땐 직장이 조금 멀었으면. 5분 만에 집에 도착해 버렸다.



오늘 나에게 허비한 시간은 망스러웠지만 엄마로서의 소소한 역할은 이룬 것 같아 위안이 되는 날이었다. 하루에 두 가지의 역할을 다 해내는 나였으면 좋겠지만 하루는 엄마로 내일은 또 나로서의 날로 균형 있게 배분해야지.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게 일상. 하나만 해도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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