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딸이 말했다. 이건 무슨 소리인가. 수학 한문 역사시험이 있는 기말고사 둘째 날이다. 시험이 끝나고 하는 말이 아닌 치기도 전부터 망했다니아침부터 엄마 추울까 봐 친절하게(?)예열을시켜준다.
그말하려고 여태 공부했나? 그러길래평소에 미리미리 준비했어야지. 주말 오전은 잔다고 시간 다 보내고 이제 와서 망했다노?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이미 내 기분은 바닥이었지만 아침부터 시험 치는 딸아이의 마음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말문이 트이면 좋은 소리는나오지 않을것 같아입을 다물었다. 잘 다녀오라고만 했다.
자신이 없어서 미리 선수 치는 건가. 아니면 실망시켜 놓고 시험 잘 보면 기쁨이 배가 되라고 하는 미끼인 건지(그랬으면 좋겠다)
시험 치기 한 달 전스터디카페를 등록했다. 못마땅했다. 처음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무슨 중등이가 돈 주고 공부를 해 고등학생도 아니고. 나도 여태 안 가본 곳을.도서관열람실 가면 조용하니 얼마나 좋아. 절대 안간단다.그렇다. 어미는 돈이 아깝다. 학원에서 배워오는 곳이랑은 다른 개념이다. 내 돈 안 들이고 스스로공부해 주길 원했다. 잘되도 네 인생 못되도 네 인생이다. 그렇게 버티고 싶었지만 본인 의지로 해 보겠다는 아이를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공부 잘해도 내 인생. 못해도 내인생. 내가 그렇게 자랐다. 학창 시절 공부로 부모님 기쁘게 해 드린 적이 없다. 못했다고 혼난 기억도 없다. 나의 학창 시절 부모님은 늘 바빴다. 언니들은 알아서 공부를 잘했고 나는 알아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 나름 애는 썼는데. 노력의 기준은 다 다르니까.
딸아이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는 엄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줄 똑바로 잡아야 한다. 아이와 같이 흔들려선 안된다. 학교졸업만 하면 내 인생에 더 이상 시험은 없는 줄로만 알았다. 왜 매번 나까지 시험에 들게 하는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다시 중간 기말고사가 반복되고 내 인생 두번째 수능이 다가오고 있다. 내가 치러야 할 시험도 아닌데 왜 벌써부터 긴장이 되는지 모르겠다. 알아서 잘해주길 바란다.
지금 시행착오 많이 겪어보라고.망하더라도 지금 망해봐야 한다. 중등 때는 그래도 된다. 결과가 안 좋으면여태해왔던 방식 말고 다르게도해보라고 큰딸에게 말했다. 뭐가 잘못된 건지 스스로 알아채는 게 중요하다. 엄마인 내가 공부에 관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관여하면 알아서 한다 하고 안 하면 신경 안 썼다 그러고 중간지점을 알고 싶다.
말이라도 예쁘게 했으면 좋으련만. 눈 닫고 귀 닫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엄마는 우리 딸이 누구보다 잘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안다. 애쓰는 것도 알지만 늘 더 해주길 바라는 게 부모마음이다. '망했다'는 건 잘하고 싶은데 기대만큼 못 미칠까 봐 내비치는 두려움 아닐까. 아예 손 놓고 말로만 망했다고 하는 게 아닌 거 알고 있다. 잘하고 있다. 그런 마음이면 인생 망할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