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님이반짝 Jun 02. 2024

블랙홀처럼 빠져들었다


파란 하늘 아래에 내 마음도 두둥실 구름 위로 안착했다. 먼 길 떠나는 여행도 아니고 장소만 옮겼을 뿐인데 기분이 상쾌하다.  

 



토요일 오후 우리 가족은 카페로 향했다. 책 한 권과 커피 한 잔이면 어디든 상관없을 것 같았다. 집에 있어도 좋지만 둘째의 원망 섞인 목소리를 외면하자면 어디든 나서야 했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곳은 잘 협상되지 않는다. 양보가 필요하다. 양보는 무슨 이번엔 나의 의견이 90% 반영된 곳으로 정했다.


미리 챙겨 온 책과 숙제할 것을 들고 각자 앉고 싶은 자리에 앉는다. 최소 두 시간은 다가오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집 초중학생은 호강이다. 라떼는 말이야(ㅋㅋ) 이런 곳은 상상도 할 수 없었 생각이 절로 든다. 두 시간은 무슨 큰아이 둘째 아이 번갈아가며 중요하지 않은 말을 건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눈빛과 손짓으로 신호를 주었다(다 안다) 이제는 안 오겠지. 



헐적으로 진한 사랑을 표하는 남편 덕분에 평화로운 시간은 연장되었다. 근처 체험관이 있는 곳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우리는 잘 있으니 조금 더 시간을 보내라는 사진으로 나를 안정시켰다.




새로운 곳의 기대감, 처음 마주하는 설렘, 가끔 마시는 반가운 맛, 궁금해지는 이야기,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문장. 모든 게 조화롭다. 보자마자 내 마음에 쏙 드는 예쁜 옷을 선물 받은 것 같다.


익숙한 집이 좋았다. 이동시간이 아까웠다. 새로운 장소는 생각을 변화시켰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어나기가 싫어진다. 바닐라콜드브루의 단맛도 시간이 지나 얼음과 하나가 되었다. 쓰고자 하는 생각도 점점 옅어진다. 어느새 이곳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


제주도로 이주하여 사는 내용을 읽으며 그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제주도로 떠나고 싶었다. 뒷장면을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 대형견을 키우는 로망도 잠시 꿈꿔보았다. 어느새 내 옆에 앉아 따뜻한 솜털을 들이대며 쓰다듬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글은 또 왜 이렇게 술술 읽히는지 문장과 문단 속을 허우적거렸다. 블랙홀처럼 빨려 들었다. 눈이 커지는 문장은 잡아두었다. 글씨만 잡았지 영혼까지 잡을 순 없었다.




딸에게 전화가 온다. 이만 제주도에서 일하던 가게를 빠져나와야 했다. 나오기 전 인사도 못하고 몸만 나오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 들렀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순간 운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은 생각만 할 수 있었다. 다음엔 어디로 가봐야 하나. 누구를 설득해야 하나. 세 시간의 진한 여운이 남는다. 또 다른 블랙홀을 찾아 떠나고 싶어진다.





작가의 이전글 배도 부르고 마음도 부른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