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자기실현을 할 것인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저자 피터 드러커 (Peter F. Drucker: 1909.11.19 ~ 2005.11.11)는 190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으나 생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다. 경영학자이자 교수, 컨설턴트, 작가로 30권이 넘는 경영서적을 썼다. 20세기의 기업 경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 중의 하나로, 경영학의 아버지, 구루, 미래학자 등으로 불렸지만 정작 그는 ‘미래학자’로 불리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고. 대신에 그는 스스로를 “사회생태학자(Social Ecologist)”라고 불렀다.
피터 드러커, 경영학을 그것도 미국의 대학교에서 배우면서 지겹도록 들은 이름이다. 그의 책을 제대로 정독한 건 이 책이 처음이지만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 Harvard Business Review) 등에 쓴 그의 글은 매니지먼트나 마케팅 수업의 교재로 많이 읽었다. 2000년대 초반에 경영학과 대학원 학생으로 그의 글을 읽으면서 너무나 뛰어난 그의 혜안과 방대한 지식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프로페셔널의 조건>을 읽기 전에 살짝 설레기도 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 걸까? 아니면 내가 변한 걸까? 기대와는 달리 첫 부분부터 뭔가 이상했다. 뒤로 가면 좀 다르겠지… 했는데, 별로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좀 더 실망스러웠다. 이 책이 첫 출판되었던 10여 년 전에 읽었더라면 달랐을까?
지금, 즉 조직을 떠났고 앞으로는 그와 같이 큰 규모의 조직에서 일할 생각이 없는, 시점에서 읽은 이 책의 느낌은 뭔가 시대에 많이 뒤떨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다. 내가 조직에서 일하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다. 비슷하게 매니지먼트 사상가로 불리는 찰스 핸디의 <코끼리와 벼룩>과 비교해 봐도, 아직도 조직 내에서의 개인의 성공에만 집중하는 그의 관점이 매우 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찰스 핸디가 피터 드러커보다 23년이나 늦게 태어났고, 그는 아직도 현역이다. 다를 수밖에 없겠다.
다소 실망스럽고 공감이 안 가는 부분도 많았지만,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고 해도 자신이 살지 못하는 앞날에 맞춰 글을 쓰기는 어려웠을 거다. 책을 읽고 나니 그가 왜 “미래학자”로 불리고 싶어 하지 않았고, 또 예측이나 예언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싫어했는지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영감을 주는 부분들이 꽤 있었다.
나로서는 20세기에 일어난 사건들 가운데 ‘인구 혁명’을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고 싶다. 인간의 삶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그 인구 혁명 말이다.
20세기 초에는 어느 국가에서든 육체 노동자가 전체 노동 인구의 90퍼센트 내지 95퍼센트를 차지했다. 농부들, 가정의 하인들, 공장의 노동자들, 광부들 그리고 건설 현장의 인부들이 노동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것이다. 또한 평균 수명, 특히 평균 근로 수명(working life expectancy)이 아주 낮았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50세 – 당시 노령 인구로 취급되기 시작한 연령 – 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육체노동을 할 수 없는 무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런데 오늘날 개인의 평균 수명, 특히 지식 근로자의 평균 수명은 20세기 초에 예측되었던 것 이상으로 월등히 증가한 반면, 고용 기관의 평균 존속 기간은 실질적으로 감소했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인구 변화가 사회를 다시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인구학자 조영태 교수는 그의 저서 <정해진 미래: 인구학이 말하는 10년 후 한국 그리고 생존전략>에서 ‘사회 변화와 미래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는 수단이 “인구 변동”이란 것을 깨닫고 이를 읽어내는 해석력을 가져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식 근로자는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과거의 어떤 근로자와도 다르다. 첫째, 지식 근로자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휴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지식 근로자는 어떤 고용 기관보다도 더 오래 살 것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지식은 과거의 어떤 자원과도 다른 매우 독특한 자원이다. 지식은 오직 고도로 전문화되었을 때에만 효과를 발휘한다.
이 글을 처음 읽었던 건 직장을 그만두고 3년이 지났을 때였다. 조기 퇴직을 하며 받았던 돈이 아직 남아있긴 했지만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심하게 동요되던 때였다. 그에 말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의할 수 없었다. 내가 가졌던 지식 근로자의 “생산 수단”이 15년간 일하면서 쌓았던 마케팅 지식이라고만 생각했을 때다. 회사에서는 나름 실력을 인정받으며 잘 나갔지만 조직을 벗어나면 크게 쓸모가 없어 보였다. 그동안 잘못 살았다며 후회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마케터로 일했다고 해서 마케팅 지식만 있는 건 아니다. 나만 해도 프레젠테이션 작성 및 발표 스킬, 고객 응대 스킬, 벤치마킹, 기획서 작성, 일하는 순서 정하기 등 직장에 다닐 때는 너무나 당연해서 기술이라 생각도 못했던 기술을 사용해서 일하고 있다. 다소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역시 아무나 구루라 불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사람들로부터 “당신이 쓴 책 가운데 어느 책을 최고로 꼽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웃으며 “바로 다음에 나올 책이지요.”라고 대답한다. 웃으며 대답하긴 하지만 결코 농담은 아니다. 나는 베르디가 여든 살이라는 나이에도 늘 자신을 피해 달아나는 완벽을 추구하면서 오페라를 작곡했던 그때 그 심정으로 대답한 것이다. 비록 지금 내 나이가 폴스타프를 작곡할 당시의 베르디보다 많긴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앞으로 몇 권의 책을 더 쓸 계획을 갖고 있다. 그리고 바라건대, 앞으로 나올 책들은 과거에 나왔던 책들보다 더 나을 것이고, 더 중요한 책으로 읽힐 것이고, 그리고 조금이나마 더 완벽하게 될 것이다.
겨우 책 한 권 쓴 주제에 우습지만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특히 두 번째 책을 준비하는 지금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
성공적인 경력이란 ‘계획’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강점, 자신의 일하는 방식,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을 앎으로써 기회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나갈 수 있다. 이 세 가지를 알면 자신이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고, 자신이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면 보통 사람 – 매우 성실하고 유능하지만, 한편으로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 – 도 뛰어난 성과를 달성하 수 있다.
전문가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우수성(excellence)을 발휘하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우수한 능력을 갖추는 것은 스스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전문가적 기량은 업무의 수준을 월등히 높이는 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 업무를 수행하는 개인의 성장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전문 직업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craftsmanship)을 갖추지 못하면, 업무를 잘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으로서 자기 성장도 이룩하지 못한다.
요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이다. 작은 성공에 만족하고 기뻐하지만 갈 길이 멀다. 때 마침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나를 되돌아보게 된 게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그림 출처: https://thewalrusandthehoneybee.com/if-peter-drucker-kept-bees/